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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카운터테너 이동규, 무대 위 슈퍼맨이 연 오페라 신세계

‘오를란도 핀토판쵸’ 주역 “21세기 관객들에게 추천하는 바로크 오페라”

한국의 카운터테너 1세대 이동규(40)는 팬클럽이 있는 흔치 않는 성악가이다. 그의 해외 및 국내 공연 일정을 다 체크하면서 모든 공연장을 찾아다니는 팬들도 상당하다. 그는 “오페라 모기에 물려 계속 긁고 있는 관객들이 몇 명 있다”며 위트 넘치는 멘트로 받았다. 한번 빠지면 계속 듣고 싶을 정도로 그의 음악은 중독성이 강했다.

“팬클럽까진 아니고 제 음악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다. 비공개 공연도 다 찾아와주시는 걸 보고 놀랐다. 몇 년 전에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나갔는데 그 때 오페라 신세계에 빠진 관객들과 매번 만나고 있어요. 단순히 저를 좋아해주시기 보단 10년 넘게 오페라 및 클래식을 사랑해주시는 것 같아 좋습니다.”

베이스 바리톤에서 카운터 테너까지 광대한 음역의 주인공. 이동규가 국립오페라단의 ‘오를란도 핀토 판쵸’ 주역에 다시 한번 초청 돼 오는 10일과 12~1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카운터테너 이동규 /사진=조은정 기자




◆ “열려있는 아티스트와 작업은 이동규도 춤추게 해”

국립오페라단이 ‘바로크 오페라 발굴’이라는 유럽의 오페라계의 트렌트를 선도하며 호평을 이끌어낸 ‘오를란도 핀토 파쵸’는 비발디는 특유의 천재적인 음악성이 어우러진 오페라이다. 바로크 음악 특유의 생동감과 풍요로움이 돋보이는 이번 작품은 8-9세기에 걸쳐 서유럽의 통일을 이끌고 황제에 즉위했던 샤를 대제의 12 기사 중 한 사람인 오를란도를 중심으로 엇갈리는 7각 관계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번에 새롭게 합류하는 바리톤 우경식(오를란도 역), 메조소프라노 프란치스카 고트발트(오리질라 역), 메조소프라노 오주영씨 모두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작품을 빛낸다.

2016 인터내셔널 오페라 어워즈 영디렉터상 수상에 빛나는 젊은 감각의 연출가 파비오 체레사가 보다 섬세하게 다듬었다. 이동규는 “좀 더 코믹하게, 좀 더 감정을 넣어서 디테일하게 수정하셨더라. 아이디어가 퐁퐁 솟아나시는 분이다”여 연출가에 대한 신뢰감을 표했다. 새로운 지휘자 게오르그 페트루와의 시너지도 대단했다. 그가 오면서 음악은 더 섬세해지고 소리가 박력 있어졌다며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파비오와 게오르그는 이동규와 음악을 바라보는 시각이 비슷했다. 가슴이 열려있는 예술가와의 작업은 끼 많은 아티스트 이동규가 더욱 신나서 춤추게 만들었다.

“예술가들은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정적인 색깔을 지닌 지휘자와 아카데믹한 스타일만 강조하는 연출가와 할 때, 그와 반대인 연출가와 할 때 성악가들이 느끼는 게 너무 달라요. 예쁘게만 하려고 하는 분을 만나면 음악을 찢고 싶어져요. ”

“바로크 음악이라고 하지만 그 음악을 듣는 이는 21세기 관객입니다. 지금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호감가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 지휘자님은 알아서 다양한 음을 만들어주세요. 너무 고전적인 소리보단 찢어지는 소리가 듣는 재미가 있거든요. 트렌드를 무시할 수 없다고 봐요. 음악도 업그레이드 해야 해요. 일례로 휴대폰 전화도 매년 사양이 업그레이드 되고 그만큼 가격도 올라요. 그래도 대중들은 그 휴대폰을 사잖아요. 우리도 업그레이드 해서 음악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죠. 표를 비싸게 받아도 관객들이 후회 하지 않는 연주를 만들고 싶어요.”

아르질라노 역의 카운터테너 이동규는 한국을 대표하는 카운터테너로 스위스 취리히오페라, 바젤극장,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퍼, 베를린 코미쉐오퍼, 베를린 도이치오퍼 등을 오가며 활약하고 있다. /사진=국립오페라단


◆ ‘연기까지 잘하는 성악가’에게 찾아온 슬럼프

국립오페라단과는 2010년 글룩의 바로크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부터 2011년 구노의 ‘파우스트’, 그리고 2012년과 2014년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를 통해 호흡을 맞췄다. 특히 성악적 기량 뿐 아니라 연기까지 뛰어나 관객들에게 듣는 재미에 이어 보는 재미까지를 선사했다.

“모든 공연은 재미있고 즐거워야 한다”고 말하는 이동규에게 따라 붙는 별명은 ‘연기까지 잘하는 성악가’이다. 실제로 인터뷰 내내 화려한 입담을 자랑하며 취재진을 웃게 만들었다.

그런 그에게도 슬럼프가 있었다. 현재 그의 나이는 40세. 16세 때부터 노래를 시작해 20년이 넘게 슈퍼맨 파워를 자랑한 그이지만 최근 몇 년 간 우울증이 찾아왔다고 한다. 노래를 불러도 이전처럼 행복하지 않았다. “노래하는 이들은 성대가 부딪치면서 해피에너지를 쏟아낸다고 해요. 몸이 아파도 연주 할 수 있는 건 무대 위에서 행복한 호르몬, 즉 엔도르핀이 나오니까 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게 제대로 안 되니까 우울해지더라구요.”

병원을 찾아가보고 주변 선생님들에게 자문도 구했다. 하지만 다들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오랜 친구가 명답을 알려줬다. 바로 “제 몸에 맞게 노래를 해야 한다”고 말한 것.

“몸이 20대가 아닌데 20대처럼 노래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긴다고 말하더군요. 나이가 들면 에너지도 옛날 같지 않고 허약해지는 게 당연하잖아요. 성대는 안 그러겠어요. 제 나이에 20년 넘게 노래하는 것도 감사하지만, 목을 너무 혹사 시킨 것 같아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그는 빨리 돈을 벌어서 안정을 찾고자 했다. 그렇게 악바리 같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유럽 무대에 서면서 연출자에게 점수를 타고자 톡톡 튀는 연기에도 신경을 썼다. 그렇게 보낸 20년은 결국 ‘이상 징후’를 몸에 내보냈다.



“여러 가지 문제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우울해졌던 것 같아요. 교수로 있는 친구에게 1년 넘게 트레이닝을 받고 있어요. 무엇보다 제가 기초를 까먹고 있었다는 걸 실감했어요. 다시 제로로 가서 기초부터 트레이닝을 받고 있어요. 기초가 탄탄해야 아이디어가 많이 나올 수 있다는 걸 확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캐나다 벤쿠버 음악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콩쿠르 최연소 입상을 한 카운터테너 이동규는 2007년 함부르크 국립극장에서 한국인 카운터테너로서는 최초로 오페라 ‘라다미스토’의 주역으로 발탁되어 “완벽한 콜로라투라”라는 찬사를 받은 주인공이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장 크리스토프 스피노지, 이온 마린, 시몬 영, 르네 야콥스, 야닉 네제-세겡, 알렉산드로 데 마르키 등과 협연해왔다.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해온 카운터테너이다. 그런 그에게 슬럼프는 제 2막 인생을 열게 했다. 살아남기 위해 몸을 혹사시키기 보다는 보다 즐겁게 노래하고자 했고, 자신의 뒤를 이을 카운터테너 후배 양성에도 더욱 눈을 넓히게 됐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이는 바로 카운터 테너 정시만이다. 이번 작품에서 함께 출연한다.

그는 정시만을 “정통 클래식을 소화할 카운터테너이자 성대를 훔쳐 오고 싶은 성악가이다”고 평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저는 실수를 잘 하는 편인데, 시만씨는 연습할 때도 한마디도 틀리지 않는 노력파이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카운터테너 이동규, 정시만 /사진=조은정 기자




카운터테너 이동규


◆ 비상한 카운터테너 이동규의 2막 인생은?

변성기 이전의 소년을 거세한 카스트라토와 달리, 카운터테너는 남성이 훈련을 통해 여성의 목소리와 음역을 내는 성악가이다. 테너 음역대의 가수 들 중에 뛰어난 실력파를 찾기 어려운 것에 비해, 카운터테너 음역대 가수는 그 자체가 거의 없다. 바로크 음악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해지면서 카운터 테너의 무대를 볼 수 있는 기회도 넓어진 것도 사실.

하지만 여전히 대중들은 카운터테너가 노래를 부르면 놀라움과 호기심이 섞인 시선을 보낸다.

“노래 할 때 보면 사람들이 ‘뭐야?’ 하는 식으로 놀라더라. 교회에서 특송을 하면 자다가도 깨는 어르신들을 많이 봤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희귀종(?)으로 보는 경향이 있긴 하다.”

곧 카운터테너가 부르는 음악을 팝페라와 같은 장르로 보는 태도를 꼬집었다. 여성의 음역으로 노래하는 카운터테너와 오페라와 팝의 경계를 넘나드는 팝페라 창법은 분명 다르다는 것.

“한동안 제가 뭘 불러도 팝페라 아리아 너무 잘 들었다고 반응을 해주셨다. 그래서 대중 방송에 출연 하는 걸 꺼리기도 했다. 카운터테너 가수들이 팝페라 쪽으로 가시는 분도 있는 걸 안다. 하지만 팝페라 음악과는 분명 다르다.”

그는 음악적으로 선입견을 갖거나 장르의 한계를 구분 짓지 않는 호기심 많은 예술가이다. 기회가 되면 배우에도 도전하고 싶고, 좀 더 나이가 들면 연출가로 나서고 싶다고 했다. 그것도 세트 디자인, 의상 디자인, 연출까지 다 해 낼 수 있는 만능 연출가를 꿈꾼다.

“전 연출 작업이 재미있어요. 뭔가를 설명할 때 글로 정리하는 것도 자신 있어요. 그리고 백스테이지 검토 하는 걸 즐겨해요. 이번 ‘오를란도 핀토파쵸’ 백스테이지에 가서도 세트를 자세히 뜯어봤어요. 이번에 의상 뿐 아니라 신발이 화려하고 특이했잖아요. 언뜻 말 발굽처럼 보이는데 좀 전에도 직접 만지작 거리고 왔어요. 살짝 해진 부분이 보이면 들쳐보고 구겨 보고 해요. 국립 오페라단 ‘보리스 고두노프’를 연출한 스테파노 포다 연출님 색깔도 좋아해요. 대신 전 화려하고 디테일한 연출보단 미니멀한 요소를 많이 넣고 연출을 선 보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그는 테너도 아니고 소프라노도 아닌 카운터테너를 두고 “머리가 비상한 여우 같은 특성을 지녔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그의 비상한 2막 인생은 40세부터 시작일 듯 하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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