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3일 오후 11시45분께 서울 도봉구 창동에서 경찰과 음주운전자 간의 도심 추격전이 벌어졌다. 지하차도에서 음주단속을 하던 경찰관을 보고 달아난 오모(32)씨는 과속과 역주행, 신호위반까지 하면서 800여m를 도주했다. 곧바로 오씨의 차량을 순찰차가 뒤쫓으면서 추격전은 5분여 만에 막을 내렸지만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은 황당한 상황을 목격했다. 오씨가 한손에 캔맥주를 들고 차량에서 내렸기 때문이다.
오씨는 경찰 앞에서 맥주를 들이키며 “술은 여기서 마셨고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차된 차량 안에서 술을 마셨더라도 음주운전으로 처벌할 수 없다. 맥주를 마시기 전 음주 측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도 음주운전 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랑이 끝에 경찰이 음주 축정기를 들이대자 오씨는 “방금 마신 양을 빼달라”고 억지를 부렸고, 측정 결과, 오씨의 혈중알코올 농도는 면허정지 수치인 0.062%였다. 오씨는 끝까지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다고 오히려 경찰관들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경찰은 일단 현장에서 오씨가 마시던 캔맥주를 확보한 뒤 오씨를 귀가 조치했다.
열흘 뒤 경찰서를 다시 찾은 오씨는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아야 했다. 경찰이 위드마크(Widmark) 공식을 적용한 오씨의 혈중알코올 농도를 계산해 내놓았기 때문이다. 위드마크 공식은 시간이 많이 경과된 음주운전자의 혈중알코올 농도를 역추산하는 기법으로 일반적으로 술이 깬 운전자의 음주량을 측정하는데 사용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엔 김씨가 마신 술의 양과 체내흡수율을 체중 등으로 나눠 음주운전 당시 혈중알코올 농도를 측정하는데 활용됐다. 경찰이 확보한 맥주 한캔(355㎖) 중 오씨가 마신 양은 정확히 85㎖였고, 이를 성인 남성 평균 체내흡수율과 곱해 체중(83㎏)으로 나눠 혈중알코올 농도로 환산하면 0.006%라는 결과가 나온다.
경찰은 오씨가 요구한대로 현장에서 마신 술의 양(0.006%)을 제외한 0.056%를 음주운전 당시 오씨의 혈중알코올 농도로 결론지었다. 면허정지 수준이다. 이는 성인 남성이 소주 3~4잔 또는 맥주 500cc를 마신 뒤 측정되는 수준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의 수사결과는 실제로도 정확했다. 경찰 조사 결과, 오씨는 운전 직전 동승자인 박모(32)씨와 함께 식당에서 각각 맥주 500㏄ 한 잔씩을 마신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오씨는 음주운전 및 난폭운전 혐의로, 박씨는 음주운전 방조 혐의로 각각 불구속 입건했다. 음주단속을 피해 달아나는 과정에서 난폭운전을 한 혐의로 벌점이 추가돼 오씨의 면허도 취소됐다. 오씨는 지난 2012년도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전력이 있었다.
단속 당시 음주사실을 완강히 부인해오던 오씨는 경찰이 내민 음주 수치에 범행 일체를 자백하고 선처를 구했다. 경찰 조사에서 오씨는 “면허 취소만 안 당하게 해달라”고 하소연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성복 서울 도봉경찰서 교통범죄수사팀장은 “술을 마시면 운전대를 잡지 않는 게 최선”이라며 “음주운전은 반드시 단속된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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