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검찰은 A그룹 경영비리 의혹을 수사하면서 1톤 트럭 17대 분량의 압수물을 확보했다. 내부 경영정보가 담긴 중요 서류와 하드디스크, 각종 회계자료 등이다. A그룹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했지만 압수물을 돌려받기까지 수개월이 걸렸다. 이 기간 그룹 경영진은 내부 중요 서류들이 모두 사라져 경영상 어려움을 호소했다. 검찰 또한 방대한 자료를 분류하는 데만 며칠을 허비해야 해 수사 초반부터 진이 빠져버렸다.
검찰은 막대한 분량의 압수물과 시간을 요구하는 회계자료 분석을 과학적으로 쉽고 빨리 풀어내기 위한 새로운 플랜을 짜고 있다. 디지털 포렌식 수사 기법에 기업 회계 분석을 접목하는 ‘포렌식 어카운팅’의 업그레이드를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대검찰청 디지털수사과는 중견기업용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 분석 연구를 시작했다. 지난해 중소기업용 시스템 연구에 이은 2년 차 연구 계획이다. 검찰은 각 기업에서 주로 사용하는 ERP 프로그램을 분석해 정형화된 회계 데이터 수집을 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회계 비리를 찾아내기 위해 필요한 정보만 선별해 확보하겠다는 뜻이다.
유형별 분개장과 계정별원장·재무상태표 등 장부뿐 아니라 회계 시스템 분석을 위해 필요한 로그인·IP 정보 등 각종 보조자료까지 정형화해 확보하는 방식이다. 수집하는 데이터는 금융·통신·제조 등 산업별 기업군에 따라 유형을 나눌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백업 파일 구조 분석으로 삭제된 자료까지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검찰은 중견기업용 ERP 시스템 연구 용역을 올해 말까지 맡긴 뒤 이르면 내년 초부터 본격 개발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정형화돼 선별된 자료는 자동적으로 회계 부정 여부를 판단하는 기초 자료로 활용된다. 확보된 회계 자료는 그동안 축적된 각종 경영 비리 사례에 맞춰 설계된 ‘부정 시나리오’에 입력된다. 입력된 자료는 시나리오별로 대응을 거쳐 데이터와 그래프 통계 자료로 만들어진다. 자체 분석을 거치면 기초 회계 시스템 분석 보고서가 생성된다. 과거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됐던 회계 분석이 자동으로 추출되고 자동으로 분석되는 것이다. 부정 시나리오 대응 여부에 따라 회계 부정 여부도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검찰은 다양한 종류의 회계 부정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최소 30개 이상의 부정 시나리오를 개발할 계획이다. 또 해당 ERP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는 기업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회계 데이터를 사용해 부정 시나리오로 분석하는 기능도 함께 연구하기로 했다.
장기적으로는 부정 시나리오 적발을 위해 전용 시스템을 구성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만들어 활용하는 등 ‘고성능 분석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검찰 관계자는 “회계 데이터 수집 방법을 정형화해 범죄와 관련된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선별하고 수집하는 등 압수 대상자의 영업 활동 피해를 최소화할 것”이라며 “ERP 회계 시스템에 대한 수집 방법 및 회계 시스템 분석 방안을 연구해 디지털 회계 데이터에 대한 포렌식적 역량을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진동영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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