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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해결 방식 10가지 문제점-1] ① 일자리 축소·노노갈등 뻔한데...사회적 합의 없이 밀어붙여

정규직 임금 하락 부작용에

중기는 생존 위협 가능성도





문재인 정부가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는 절차 없이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사용자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면 일자리 축소, 임금 하락 등 의도치 않은 부작용뿐만 아니라 여러 주체 간 큰 갈등이 초래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통신장비 업체 A사 대표는 28일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는 동의한다”면서도 “하지만 이렇게 급하게 정부 주도로 하게 되면 민간 사업자 입장에서는 늘어나는 비용 부담을 기존 정규직 직원들의 인건비를 줄임으로써 충당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그렇게 되면 정규직 직원들의 반발도 생길 것이기 때문에 민간사업자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영계 입장을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앞서 지난 24일 “사회 각계의 정규직 전환 요구로 기업들이 매우 힘든 지경”이라며 “특히 중소기업은 생존 자체가 위협 받고 있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노노 갈등이 심화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공공 비정규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한국노총과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고 있는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은 정부 정책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개별 사업장 노조에서는 이와 다른 분위기도 감지된다. 기아차 노조는 지난달 조합원 투표에서 찬성률 71.2%로 비정규직을 노조에서 배제했다. 촉발점은 정규직 전환 규모를 둘러싼 양측 갈등이었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기아차 노조가 비정규직의 조합원 자격을 박탈한 것은 정규직의 고임금과 고용 안정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지훈·백주연기자 jhlim@sedaily.com

② 노동시장 유연성 대책없이 성급하게 추진

저성과자 해고 자율권 안주면

비정규직 전환 비용 만만찮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노동시장 유연성이 낮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박근혜 정부는 노동시장의 안정성보다 유연성 제고 쪽에 보다 무게를 뒀다. 개정을 추진한 기간제법과 파견법, 지난해 1월 발표한 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 등 양대 지침 역시 사실상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와 일정 부분 궤를 함께한다. 기간제법 개정안은 기간제 계약기간을 총 4년까지 연장하는 내용을, 파견제법 개정안은 파견 허용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각각 담고 있었다. 양대 지침은 정부 해명에도 불구하고 노동계에 의해 ‘쉬운 해고’ 와 ‘일방적 임금 삭감’ 지침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결국 수포로 돌아갔지만 이전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에 열을 올렸던 배경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 작용했다.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이 다른 나라와 견줘 현저히 낮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 유니언뱅크(UBS)가 지난해 WEF에 발표한 국가별 노동시장 유연성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139개 조사대상 국가 가운데 83위였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고용 유연성을 높여 직원 생산성에 따라 연봉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해주거나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를 자유롭게 해주지 않는 이상 기업에서는 비정규직 전환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며 “비정규직 없이 정규직만 뽑으라고 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결국 생산성에 따른 채용의 자율화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을 추진하면서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와 관련해 이렇다 할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다소 모호한 입장을 내비쳤다. 유일호 부총리는 지난 3월 “정부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 제고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 상충하기 일쑤인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자고 한 것이다. /세종=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③ 근로시간 단축·최저임금 동시 추진 부담

‘버뮤다 삼각지대’ 빠질땐

수많은 중기 사라질 우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과 동시에 제각각 추진되면서 고용 시장은 극도로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특히 근로시간 단축 등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사용자는 물론 근로자와 정부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중소기업의 한 관계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을 동시에 하라고 하는 것은 사업주들에게는 죽으라는 얘기밖에 안된다”고 토로했다. 사회적 합의를 거쳐 각 사안을 서로 조율해나가면서 추진해도 버거울 판에 이를 개별적으로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얘기다.



아울러 “결국 이들 정책이 ‘버뮤다 삼각지대’를 형성할 것이고 수많은 기업이 거기에 갇혀 사라질 것”이라며 “정부가 지원을 얘기하는데 지원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무리하게 요구하지나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정부도 급진적인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우려를 나타냈다. 고용부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중소기업의 반발이 워낙 거세다”며 “오랜 기간 주당 근로시간을 68시간까지 사실상 허용해온 행정해석을 갑자기 폐기하면 큰 혼란이 올 것”이라고 전했다. 근로시간 단축은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일부 근로자도 임금 하락을 우려하며 반대하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로시간 단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을 제시할 수 없다”면서도 “다만 근로시간 단축은 사용자와 근로자 등이 머리를 맞대고 생산성 향상, 임금 인상 등의 사안과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임지훈기자

④ ‘비정규직 채용 상한’ 넘길땐 페널티 논란

탄소배출권 방식 적용한다지만

오히려 전체 고용 줄어들수도

A 제약회사는 비정규직 비중이 30%에 육박한다. 신약 개발부터 영업직원까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업무가 비슷한 경우도 많다. 다만 연봉 차이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A사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데 부담이 없는 것 아닐까. A회사 대표는 이에 대해 “현실을 모르는 주장”이라며 “회사 입장에서는 연봉 차이가 없더라도 정규직 전환에 최소한 1인당 2,000만~3,000만원의 비용이 더 들어가게 된다”고 말했다. 4대 보험료를 비롯해 재교육 비용과 내부 시스템 개편 비용 등 보이지 않는 비용 때문이다.

정부는 ‘비정규직 고용 부담금’ 정책을 통해 대기업들의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 대해 비정규직 채용의 상한을 정하고 이를 넘어서는 기업에 대해 페널티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업종 특성상 비정규직이 많을 수밖에 없는 기업은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기보다는 부담금을 선택할 수도 있다. 정부는 징수한 부담금으로 정규직 전환 기업에 지원금을 주고, 또 사회보험료 지원 제도를 확대한다는 복안이다. 마치 이산화탄소 배출을 많이 하는 기업들은 돈을 내고 탄소 저감 시설을 설치한 기업은 배출권을 파는 탄소배출권 제도와 같은 방식으로 풀겠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탄소배출은 기업의 경영 활동으로 발생하는 부정적 외부 효과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라며 “비정규직 문제를 같은 방식으로 풀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전체 고용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

⑤ 비정규직 기준 모호한데 일괄 적용 무리

용역직원·보험모집인까지 포함

OECD기준땐 비정규직 비중 뚝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지난해 6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 중 절반에 가까운 44.5%가 비정규직 근로자라고 밝혔다. 그러나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비정규직 근로자는 644만4,000여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32.8%에 해당한다. 이 같은 차이는 상용직 중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구분하는 통계청과 달리 노사연구소는 임시직과 일용직 등도 비정규직으로 본 때문이다. 여기에 사내 하청 근로자도 비정규직으로 포함시켰다. 상용 정규직이 아니면 모두 비정규직으로 규정한 것이다.

통계청의 통계 기준 역시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비정규직 범주가 넓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고용 형태의 통계를 작성하면서 ‘고용의 한시성’을 기준으로 임시직 근로자만 비정규직으로 보고 있다. 하루 중 일부만 근무하는 시간제 근로자와 용역 직원, 보험모집인 등 개인사업자 성격을 갖는 특수형태종사자의 경우 OECD가 분류하는 임시직 근로자에 포함되지 않지만 통계청의 비정규직에는 들어간다. OECD 기준을 적용하면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비중은 15% 수준으로 떨어진다. OECD 평균(2015년 11.4%) 보다는 높은 수준이지만 비정규직이 과도하게 많다는 주장과는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통계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서로 다른 주장들이 충돌하고 사회적으로도 분열 양상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비정규직에 대한 기준을 국제적 수준으로 수정하되 각 고용 형태별 처우 개선은 미시적으로 해결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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