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타 차 단독 2위에서 기회를 엿보던 김지현(26·롯데)은 17번홀(파3)에서 10m짜리 버디를 잡은 뒤 활짝 웃어 보였다. 13언더파 공동 선두. 그러나 같은 조 선두 김현수가 곧바로 4m 버디를 넣으면서 다시 달아났다. 18번홀(파5)은 버디가 어렵지 않고 이글도 흔치 않게 나오는 홀. 김현수의 우승 가능성이 훨씬 커 보였다.
그러나 운명의 18번홀에서 승부는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요동쳤다. 김현수의 두 번째 샷이 페어웨이 오른쪽으로 길게 조성된 물에 빠진 것. 이 장면을 바로 눈앞에서 본 김지현은 아예 왼쪽으로 안전하게 보냈다. 김현수는 네 번째 샷이 조금 짧아 2퍼트 보기를 적은 반면 김지현은 간단히 3온 1퍼트 버디를 잡았다. 뒤 조 상황을 기다렸다가 우승을 확인한 김지현은 터져 나오는 눈물을 애써 참아 보였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7년차 김지현이 2013년 8월 넵스 마스터피스 우승 이후 3년10개월 만에 다시 우승컵을 들었다. 통산 3승. 김지현은 4일 롯데스카이힐 제주CC(파72·6,289야드)에서 끝난 롯데칸타타 여자오픈(총상금 6억원)에서 14언더파로 1타 차 우승을 차지했다. 상금은 1억2,000만원. 내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롯데 챔피언십 초청선수 자격도 얻었다.
첫날 선두와 2타 차 공동 5위에 올랐던 김지현은 2라운드에 무려 8타를 줄이는 코스레코드 타이기록(64타)을 작성하며 1타 차 공동 3위로 올라선 뒤 마지막 날 역전 우승에 성공했다. 마지막 날 스코어는 버디 6개, 보기 1개의 5언더파 67타. 전체 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이다.
김지현은 4년 가까이 우승가뭄이 이어지자 캐디를 교체하는 등 여러 방법을 썼다. 하지만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올 시즌 초반부터 다시 아버지에서 ‘SOS’를 요청했고 ‘캐디 아빠’와 우승을 합작했다.
경기 후 김지현은 “아버지(김재준(56))가 심한 감기로 1라운드 마치고 병원에서 링거까지 맞으셨다. 오늘도 계속 몸이 안 좋으셨는데 저를 위해 희생하셨다”면서 “아빠가 아니었다면 다시 우승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데뷔 후 111개 대회 출전 만에 첫 우승을 노렸던 김현수는 마지막 홀 두 번째 샷 실수로 다잡았던 우승을 놓쳤다. 김예진과 함께 13언더파 공동 2위. LPGA 투어 생활을 접고 국내 투어 복귀전에 나선 장하나는 1타를 잃어 8언더파 공동 9위에 만족해야 했다. 상금 1위 김해림은 5언더파 공동 23위로 마쳤다.
/서귀포=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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