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방송되는 KBS1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태조 이성계는 정말 아들 이방원을 죽이려 했나’ 편이 전파를 탄다.
태종 2년 11월에 일어난 조선 개국 이후 최초의 반란.
실록이 기록하는 역모의 주동자 ‘조사의’. 그러나 감춰져 있는 배후는 따로 있다?!
이방원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던 사건. 1402년 11월 5일 그날로 돌아가 본다!
▲ ‘살곶이 다리’의 전설, 이방원에게 화살을 겨눈 이성계?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는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다리가 있다. ‘화살이 꽂힌 곳’이라는 뜻을 가진 ‘살곶이’ 다리. 이곳에서 이성계가 이방원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시대 야사를 담은「연려실기술」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실록에는 그 어디에도 이와 관련된 기록이 없다. 이성계는 정말 이방원에게 화살을 겨누었던 것일까?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면, 이성계와 이방원을 주인공으로 ‘살곶이 다리’ 전설이 구전되어 온 이유는 무엇일까? 두 사람의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60대의 사춘기, 이성계의 방황
-태종실록 4권, 태종 2년 10월 27일
임금이(태종) 태상왕의 향하는 곳을 알지 못하여 사람을 시켜 살피었으므로, <사람의 행렬이> 길에 잇닿았다.
태종 1-2년, 이성계는 당시의 서울 ‘개경’을 떠나 떠돌아다녔다. 한 달 이상 궁을 떠나 있던 태상왕 이성계에게 이방원은, 이제 그만 돌아와 달라며 사람을 여러 차례 보내기도 했다. 항간에는 ‘부자 사이에 문제가 있으니 아버지가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도 퍼졌다. 자신의 외모를 쏙 빼닮았을 뿐 아니라, 여덟 아들 중 유일하게 과거에 급제한 이방원을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했던 이성계. 그랬던 부자의 사이는 서로 다른 조선을 꿈꾸며 점점 변해갔다. 그들은 서로에게 누구보다 위협적인 정적이 되었다. 차마 다 드러낼 수 없었던 태상왕(太上王)과 왕(王)의 갈등. 실록에 감춰져 있는 두 사람의 사연은 과연 무엇일까? <역사저널 그날>에서 이성계와 이방원의 서로에 대한 진심을 소환한다.
▲ 축소된 조선 최초의 반란
-태종실록 4권, 태종 2년 11월 5일
안변 부사 조사의 등이 군사를 일으켜 사람을 주군에 보내어 군사를 조련하였다. 조사의는 곧 현비 강씨의 족속인데, 강씨를 위하여 원수를 갚고자 한 것이었다.
태종 2년 11월 5일, 지금의 함경도 안변부의 부사 조사의가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의 수가 6, 7천 명이 되는데, 여진족까지 합세하면 만 명에 달할 듯하다’고 전해졌다. 20여 일 만에 파죽지세로 평안도까지 진출한 반란 세력. 이방원은 직접 출정하기로 결정한다. 왕이 무장을 한 채로 전장에 섰던 사건. 그러나 기록은 사건을 축소하였다. 조선 최초의 반란 주동자 조사의는 그렇게 낯선 이름으로 우리 역사에 기억되었다. 그 비밀은 당시 이성계가 서울을 떠나 머무르고 있던 지역에 숨겨져 있다는데... <역사저널 그날>에서 역사의 기록 이면에 감춰진 진실의 퍼즐 조각을 맞춰본다.
[사진=KBS 제공]
/서경스타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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