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보다 열흘이나 일찍 다가온 폭염으로 인해 한반도가 연일 가마솥 더위마냥 그야말로 푹푹 찌고 있다. 유례없는 무더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여름 중 가장 더운 날이라는 삼복(초·중·말복을 뜻함) 중 중복이 다가왔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독자라면 지금이라도 꼭 보양식을 챙기길 바랍니다)
그.런.데 ‘불과 2주 전에 초복이라고 삼계탕 먹었는데 또? ’ 라고 고민인 분들이 많을 것이다. 마침 또 즐거운 주말을 맞이해 가족과 무더위를 버틸 든든한 보양식 한 그릇으로 건강한 하루를 보낼 계획인 독자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했다. 푹푹찌는 여름 그리고 중복 날. 뻔한 삼계탕, 장어구이 말고 고급지면서도 뭔가 색다른 보양식을 찾고 있다면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가 일품이라는 망리단길 맛집 ‘장화신은고양이’를 추천한다.
One go! 일단 씹고!
예로부터 사계절이 뚜렷한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자연의 주기에 맞춰 의식주 생활 양식을 조절하는 풍습이 있다. 특히 ‘12절기’에 맞춰 한 해 농사를 지을 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 특정 음식을 챙겨 먹곤 했다. 그 중 여름 절기인 삼복은 한 해 중에서도 가장 더운 시기로 꼽히는데 흔히 폭염과 함께 쓰이는 ‘삼복 더위’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했다. 올해 삼복은 초복 7월 12일, 중복 7월 22일, 말복 8월 11일로 벌써 두 번째 복날을 맞이했으니 올 여름도 딱 절반쯤 온 셈이다. 복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바로 보양식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복날 보양식을 챙겨먹기 시작했을까? 조선 후기의 ‘동국세시기’ 에 따르면 복날은 원래 중국의 진나라 이후부터 지낸 절기 중 하나라고 기록돼 있다. 진나라 덕공 2년, 복날이 되면 성 4대문 안에서 벌레 등을 퇴치하기 위해 개를 잡아 액운을 막는 삼복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지는데 이러한 풍습이 오늘날의 복날로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후기 무렵 궁중에서 복날 더위를 이겨내라는 의미로 높은 고관들에게 빙표(氷票)를 나눠주고 장빙고에 가서 얼음을 하사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관가 밖의 일반 서민들은 복날에 닭·돼지고기 등을 끓여 먹으며 몸보신을 했고 시원한 계곡을 찾아 발을 담그며 ‘복놀이’를 했다. 즉, 보양식을 먹는 것이 복놀이 중 하나였던 셈이다.
수백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복날=보양식’이라는 불변의 진리가 굳건한 가운데 남녀노소 모두가 사랑하는 국민 보양식은 뭘까. 만성피로와 스트레스로 그 누구보다 보양식이 절실한 대한민국 직장인 1,849명에게 물어본 결과, 10명 중 7명이 ‘삼계탕’을 꼽았다. 온 국민의 대표 보양식 삼계탕(▶맛집쓰리고 삼계탕 편)에 이어 장어요리, 오리구이가 각각 2,3위 자리를 꿰찼다. 그러나 대중들의 입맛과 달리 전문가들이 꼽는 최고의 보양식은 ‘오리고기’다. 영양학적으로 완전식품으로 꼽히는 오리고기는 보양식 뿐만 아니라 다이어트식으로도 으뜸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오리보다 닭고기를 선호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닭고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과 오리 특유의 잡내 때문이다.
예부터 고급 식재료로 꼽힌 오리고기는 각종 질병에 대항할 수 있는 면역력 향상에 특효라 알려져 주로 궁중에서 몸보신용 음식으로 식탁에 올랐다. 특히 동의보감에 따르면 오리고기는 차가운 성질을 가져 무더운 여름철에 체내 열을 낮춰주고 노폐물 배출을 도와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준다고 한다. 여름철 보양식으로 두말하면 입아픈 진리의 오리 고기. 삼복 보양식 특집을 맞이해 맛집쓰리고 기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선택한 이번 맛집은 오리요리 맛집이다. 불판 위의 흔한 오리고기 구이가 아닌 분위기있게 칼질하는 오리 스테이크집 ‘장화신은고양이’의 손맛은 과연 어떨까.
※참고※
[알아두면 쓸데 있는 잡지식] ‘이런 분들’은 오리고기 강추!
1) 평소 식은땀이 많은 사람, 정력(!)이 좋지 않은 사람
2) 소화기관이 약한 사람
3) 피부병, 부인병, 신장염, 관절염을 앓고 있는 사람
4) 치료 회복 중인 환자를 비롯해 비만, 허약체질, 신경통, 빈혈인 사람
5) 잦은 음주로 인해 간이 쇠약해진 사람
Two go! 화끈하게 빨고
Three go! ‘동심파괴’를 맛보고!
연일 30도를 웃도는 폭염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앞서 말했듯이 삼복 더위를 물리칠 ‘보양식’을 제때 제대로 잘 챙겨 먹는 것이다. 딱 열흘 전인 지난 초복은 평일이었던터라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삼계탕으로 손쉽게 몸보신 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중복인 오늘(22일)은 여유로운 주말이니까 가족과 함께 웰빙데이를 보내기 위해 진즉부터 근교에 위치한 오리 맛집을 예약했다. 정말 운이 좋게도 거의 마지막 남은 테이블을 차지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문득 마음 한 켠이 저릿해졌다. 불현듯 20년도 더 된 일곱살 인생 최악의 여름밤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날이 더우니 특별히 큰 맘먹고 간담이 서늘해질(?) 충격과 공포의 납량특집(!) 에피소드를 꺼내보도록 하겠다.
우리집은 어릴 때부터 아니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늘 반려동물과 함께 지냈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모태 펫팸족인셈! 어머니께서 뱃속에 나를 품고 계셨을 때 처음 입양해온 갈색 치와와(웃프지만 당시 이름도 줄임말인 ‘갈치’라 불렀다고ㅎㅎ)가 첫 시작이었다고 한다. 첫째인 내가 태어나 아장아장 걷고 말을 시작할 때까지 항상 옆에 쌍둥이처럼 갈치가 따라다녔다. 이후 털도 채 마르지 않은 병아리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닭벼슬이 우뚝 설 때까지 키우기도 했고, 손톱만한 새끼 거북이를 데려와 대형 수조에 넣을 만큼 크게 키우기도 했다. 새, 물고기, 기니피그, 토끼 등등 다양한 생명체와의 유년기 시절을 함께했지만 유일하게 안 키워본 동물이 있었으니 바로 워너비 ‘오리’였다. 당시 한창 고집이 극에 달하던 미운 일곱 살이었던 나는 부모님께 몇날 며칠을 떼쓰고 졸라 ‘오리를 키우고 싶다’고 졸랐더랬다. 완강한 내 똥고집을 꺾을 수 없었던 부모님은 한참을 고민한 끝에 기가 막힌 묘책(!)을 떠올리셨다. 바로 집에서 키울 수 없지만 대신 근교에 있는 오리 농장을 매주 주말 데리고 가기로 한 것이다.
한적한 시골의 푸르른 대지 그리고 드넓은 호수 근처에 위치한 한 오리농장. 평화로운 알프스 목장이 떠오를만큼 수십마리의 오리 가족들이 무리지어 방목하고 있었다.(유치원 시절의 기억이므로 다소 과장· 미화된 표현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미리 알려드립니다) 오리 가족들 사이에서 미운 새끼 인간(네 접니다)은 정신없이 반나절을 뛰어다녔다. 심지어 오순이, 오돌이 손발 오그라드는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며 기념샷까지 남길 정도로 애정을 쏟았다. 한참을 뛰어논 다음엔 꼭 저녁 식사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양념 돼지 고기를 먹으며 주말을 마무리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한참을 오리와 뛰어논 다음 늘 가던 단골 고깃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러나 그 날 그 가게의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며 내 눈치를 살피던 부모님은 농장 바로 옆에 위치한 또 다른 고깃집으로 가자며 이끌었다. ‘오리를 더 볼 수 있겠구나’싶어 신나게 달려가 가게 안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런.데 덩치 큰 주인 아저씨가 힐끗 보더니 양손에 오리 두 마리의 목덜미를 잡고서는 서둘러 주방으로 쏙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미심쩍었지만 아무 의심없이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선 엄마 손을 잡고 조심스레 주방 옆에 위치한 화장실로 가는데 호기심 어린 나는 본능적으로 주방 안을 살폈고 기어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두꺼운 통나무 도마 위에 쌓인 털 빠진 생고기 더미들 옆에 쓰러진 오리 두 마리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던 것. 그렇다. 사실 그간 뛰어 놀던 오리농장은 이 오리음식점에서 직접 사육해 요리할 목적으로 만든 곳이자 고객들을 위한 체험 공간이었던 셈이다.
‘설마 내가 먹은 고기가 오순이? 오돌이?’ 그 날은 일생 일대 가장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던 날이었다. 상처입은 어린 영혼은 그날 이후 중학생이 될 때까지 오리 고기를 먹지 못했다는 후문이.. 부모님께서도 한동안 큰 시련과 우울감에 빠진 나를 달래기 위해 깨나 고생하셨다고 했다. 뇌 속 깊은 곳에 꽁꽁 봉인돼 있던 낡은 뉴런이 다시 되살아난 지금. 마음 한 켠이 저릿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오리고기의 맛에 입맛 다시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으로 씁쓸했다.
어느새 훌쩍 커버려 동심 파괴된 보통 어른의 모습. 이따가 저녁 식탁에 오리 구이가 올라오면 꼭 나를 위해 희생해준 오리를 떠올리며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해야겠다.
/정가람기자 garamj@sedaily.com
**위치: 6호선 망원역 2번 출구로 나와 약 200m 정도 쭉 걸어간 다음 왼쪽 골목으로 꺾어 걸어가면 오리 간판이 보인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망원1동 5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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