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28일 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를 전격 실시하면서 대화로 북핵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베를린 구상’이 중대 기로에 서게 됐다. 한반도 평화 모드 조성을 위해 군사·적십자회담 개최를 제안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유화 제스처를 비웃기라도 하듯 북한이 미사일 기습 도발로 응수했기 때문이다. 당분간 정부의 대북 기조가 대화보다는 제재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북한이 추가 도발을 감행할 경우 대북 정책의 전면 재수정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인 29일 오전1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국제사회의 단호한 대응을 강조한 뒤 “필요하면 우리의 독자적 대북제재를 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북한의 거듭된 도발을 더 이상 두고 보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다만 문 대통령은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단호히 대응하면서 ‘베를린 구상’의 동력이 상실되지 않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며 ‘도발에는 강력히 대응하되 대화의 문은 닫지 않겠다’는 대북 정책의 기조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바람과 달리 새 정부 대북 정책의 핵심 플랜인 베를린 구상은 당분간 추진 동력이 꺾일 수밖에 없게 됐다. 문 대통령은 6일 독일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베를린 구상을 발표한 바 있다. 정부는 베를린 구상의 후속조치로 17일 군사분계선에서의 상호 적대행위 중지를 위한 군사당국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을 북한에 제안했다. 우리 측의 제안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오던 북한이 도리어 미사일 도발로 답하면서 북핵 문제를 대화로 풀어가겠다는 베를린 구상도 일대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미국과 일본이 대화가 아닌 대북제재 확대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방인 이들을 설득할 명분도 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북한이 추가 도발까지 감행할 경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긴 여정의 운전석에 앉아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운전자론’도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당장 정치권에서는 야당을 중심으로 베를린 구상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김영우 바른정당 의원은 30일 베를린 구상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고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베를린 구상은 허상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김현상기자 kim012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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