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대북 제재를 놓고 대립하는 중국을 겨냥해 지난 30여년간 거의 쓰지 않았던 무역법의 보복조항을 부활시킬 방침이다. 미국은 특히 중국이 미국의 지적재산권이나 인공지능(AI) 기술을 훔치지 않았는지를 들여다본 뒤 일방적인 보복에 나설 것으로 알려져 미중 간 살벌한 신경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 경제전문 매체 CNBC는 2일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1974년 제정된 무역법 301조를 적용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미 정부는 수일 안에 이러한 방침을 발표할 계획으로 미 무역대표부(USTR)는 이후 정부 지시에 따라 미 기업들이 대중 무역에서 불공정거래 등에 따른 부당한 피해를 당했는지를 수개월에 걸쳐 조사할 예정이라고 CNBC는 전했다.
무역법 301조가 적용되면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를 거치지 않고 교역 상대국에 고율의 관세 부과, 라이선스 제한 등의 조치를 강구할 수 있게 돼 파장이 예상된다. 이 조항은 1980년대에 일본산 오토바이 수입 제한을 위해 적용됐으나 일방적인 교역국 제재라는 비판이 고조되고 1995년 WTO가 출범하면서 거의 쓰이지 않았다. 해당 조항에 근거해 미국은 교역에서 차별을 받거나 비합리적인 거래로 피해를 봤을 경우 상대국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으며 시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일방적인 보복조치에 나설 수 있다.
특히 미국은 이번 대중 제재의 초점을 지금까지 중국의 ‘치부’로 지적돼돈 지재권 침해, 기술도용 조사에 맞추는 것으로 알려져 중국 입장에서는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 중국은 오는 2025년까지 자율주행차·전기차·반도체·AI·로봇 등 신제조업 분야에서 선두로 올라선다는 ‘메이드 인 차이나 2025’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AI 등 10개 산업 부문에서 선두를 꿰차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쏟아붓는 한편 강력한 경쟁상대인 미국 기업들로부터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 기업에 중국에서의 특허권 사용 라이선스 인하를 압박해왔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지난달 19일 미중 포괄적경제대화가 성과 없이 끝나자 무역법 301조 적용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CNBC는 “올해 4월 팜비치에서 열린 정상회담의 후속대응을 논의하기 위해 두 나라가 지난달 워싱턴DC에서 포괄적경제대화에 나섰지만 이견만 확인한 채 끝났다”며 “공동 기자회견마저 취소되며 진전이 없자 트럼프 정부가 제재 카드를 꺼내 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올 초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의 기치를 내건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 일찌감치 미국이 무역법 301조나 보다 강력한 ‘슈퍼 301조(종합무역법 301조)’를 부활시킬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돼왔다.
이 밖에 미국이 1977년 제정된 국제비상경제권법을 중국에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정부가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 뒤 대통령에게 광범위한 무역통제권을 부여하는 국제비상경제권법을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제비상경제권법은 미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북에 억류돼 사망하자 미 의회가 북한여행금지 법안을 발의하면서 처벌 근거가 됐던 법이다.
한편 미국이 강력한 제재 카드를 꺼내 들 태세를 보이자 중국은 미국에 유화 제스처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날 리커창 중국 총리는 릭 스나이더 미시간주지사와 만나 “양국이 무역을 통해 서로 이익을 얻고 있다”며 “중국은 건강하고 안정적인 미중 관계를 위해 이해와 상호 신뢰를 높이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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