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이래 가속화된 각종 ‘트럼프 리스크’가 달러화 약세를 부추기며 글로벌 금융시장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달러화 가치 추락이 유럽과 일본 등 경쟁국 수출기업에 악재로 작용한다는 우려가 고조되며 글로벌 증시도 흔들리고 있다.
이번 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정책으로 주가가 매일 사상 최대”라며 “가짜뉴스들은 이를 보도하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실제 미 다우존스 산업지수는 2일(현지시간) 역대 최초로 지수 2만2,000선 고지를 돌파하는 등 7일 연속 사상 최고치를 이어갔다.
하지만 미 주식시장이 새로운 ‘심리적 이정표’에 도달하며 축포를 쏘아 올린 것과는 달리 한국을 포함한 유럽·아시아 등 글로벌 증시는 ‘동반 랠리’는커녕 줄이어 하락했다.
미 증시 상승을 이끈 기업 실적 개선세는 주요국 대부분에서 동일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동반 랠리가 생략된 것은 최근 심화 되는 달러 약세가 유럽과 일본 등지의 수출기업들에 악재로 작용한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지난달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추가 금리 인상 시점을 연기할 수 있다고 시사한 이래 최근 유로 기준 달러 가치는 2년 반 최저치인 유로 당 1.8달러 선까지 급락했다. 6개 주요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환산한 달러인덱스도 올 들어 10%에 가까이 하락하며 2011년 이후 처음으로 5개월 연속 내렸다. 트럼프 취임으로 침체된 경기가 회복되고 금리가 보다 빠르게 오르는 등 경제 체력이 튼튼해 질 것으로 기대했던 투자자들도 당황하긴 마찬가지다.
달러 약세는 유럽중앙은행(ECB)과 영국중앙은행(BOE) 등 기타 주요국의 출구전략 가능성, 북한 미사일 발사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 등 여러 원인이 작용한 결과지만 ‘러시아 커넥션’ 등으로 촉발된 워싱턴의 정치 혼란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늦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수출기업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 달러 약세를 용인하고 이에 무게를 실은 점이 주효했다고 전문가들은 풀이했다. 기업 실적호조와 경제 회복이 증시 상승의 주요 요인이라면 한 나라 경제의 가치와 건전성을 나타내는 바로미터인 환 가치는 이처럼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시장은 앞으로도 달러 가치는 더 떨어질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달러 약세로 통화 가치가 내리면 수출 환산 이익이 늘어나는 등 자국 기업의 실적을 ‘윤색’할 수 있어 트럼프 대통령은 ‘약 달러’를 선호해 왔다. 실제 내년 2월 재임 가능성이 어두웠던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정부 정책 기조에 부합하는 성명을 내놓은 이후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훌륭한 차기 의장 후보”라는 평가를 얻었다.
실제 약 달러를 선호하는 미 행정부 정책 기조가 이어지면서 영국·독일·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 증시는 2·4분기 기업실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지난 5~6월 하락세로 전환했다. 오름세를 이어 온 일본 증시도 지난달부터 하락 반전했다. 달러화 가치가 내리면 미국 상품 가격은 낮아지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타국 제품 가격은 그만큼 오르는 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가 10% 오를 때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기업 이익은 4∼5% 하락하는 등 환 효과가 실적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앞서 일본도 자국 경제 회복을 위한 각종 정책을 동원하면서 선진국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환 시장에 개입, ‘엔화 약세’를 유도하는 환율 정책을 가장 먼저 구사했었다.
미국과 수출 품목이 겹치지 않는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주요 증시도 출렁이긴 마찬가지다. 임박한 미국 발 대중 무역제재가 현실화돼 중국 경제에 먹구름이 끼일 경우 중국 시장에 의존해 온 동남아 주요 기업 실적에 가장 먼저 영향을 줄 수 있어서라는 평가다.
미국 경제에도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달러 약세 속에 조달비용이 낮아지면서 올 상반기 미국 회사채 발행액이 1조 달러를 넘어서는 등 회사채 발행잔액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아 미국 경제에 부실기업의 과다부채 등 잠재적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외신들은 “시장의 자연스러운 가격 형성 기능을 넘어 통화 가치를 왜곡한다면 언젠가 더 큰 역풍을 초래하기 마련”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 불안과 미국우선주의 기조가 글로벌 시장의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희원기자·박홍용기자 heew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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