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이 목숨보다 소중히 지켜온 ‘효’는 우리 정신문화의 뿌리다. 인륜의 으뜸가는 덕성이며 우리 정통문화의 근본적인 가치다. 이러한 우리의 효를 법으로 삭제하겠다는 법안이 나왔다. 현행 인성교육진흥법상의 8대 인성교육 덕목(예·효·정직·책임·존중·배려·협동·소통) 가운데 효를 삭제하는 인성교육진흥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나와 온 국민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박경미 의원은 효를 삭제하는 이유에 대해 ‘인성교육의 목표가 되는 인성의 가치 덕목은 충효교육을 연상하게 될 정도로 지나치게 전통적 가치를 우선하고 있으므로 (중략) 핵심가치를 시민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적절히 조정하고 (중략) 민주적인 인성을 갖춘 시민 육성이 가능하도록 현행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성교육의 근간인 충과 효를 뒷전으로 미루고 민주적인 시민 육성을 위해 인성교육의 뿌리를 옮기겠다는 발상이다.
효를 배제한 인성교육은 있을 수 없다.
우선 인성교육은 가정교육·학교교육·사회교육이 통합적이고 잉태되는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전 생애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교육이다. 그리고 효는 인성교육에서 가장 중요하며 가정을 건강하게 해 가정의 조화와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가치이자 덕목이라는 점에서 전통 문화가치로 보존되고 있다. 이는 또 현행 효행장려 및 지원에 관한 법의 취지에도 어긋나는 발상이다.
둘째, 효는 가족사랑을 시작으로 이웃과 사회, 나라와 자연으로 확대하는 생명존중 사상이다. 아널드 토인비, 앨빈 토플러,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등의 석학들이 예찬하듯이 미래에도 지켜야 할 가치다.
따라서 패륜범죄·자살률·이혼율의 증가와 저출산·고령화·학교폭력 등 현안 과제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 효가 철학적 기초로 작용해야 한다.
이렇듯 소중한 가치이자 덕목인 효는 박 의원이 주장하는 시민의식 강화도 효가 기본이 돼야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포함돼야 할 가치다.
우리 조상들은 보다 나은 가정, 보다 올바른 사회를 위해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르쳤다. 군신유의(君臣有義)보다 부자유친(父子有親)을 강조한 나머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보다 수신제가(修身齊家)를 먼저 따졌고 인륜과 도덕이 근간을 이루는 사회를 위해 효 사상을 으뜸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말할 나위 없이 백행이 근본인 효를 바탕으로 삼지 않고는 제 몸은커녕 제 집안조차 거느릴 수 없다는 가르침이다. 도대체 우리 조상들은 무엇 때문에 효란 오상(五常)의 근본이요, 모든 행실의 근원이라 단정하고 효를 으뜸으로 받아들였을까. 이는 ‘효도하면 어질고 의롭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효도하면 예의와 지혜가 없는 사람이 없으며 효도하면 믿음이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효는 100가지, 1,000가지 행실의 근본이 된다고 한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적 인성을 갖춘 시민 육성을 위해 인간만이 지닌 가치관인 효를 홀대하겠다니 앞으로 인간과 짐승을 무엇으로 구별하며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자랑스러운 나라의 정체성은 또 어찌 한단 말인가.
“어버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미워하지 않고 어버이를 존경하는 사람은 남에게 오만하지 않는다.” ‘효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또 효도하는 마음은 백 가지 행실의 근본이요, 만 가지 가르침의 근원이라 했다. 그래서 세종대왕은 문자를 모르는 백성을 위해 효행의 풍습을 널리 알리고자 효행의 사례를 그림으로 그린 ‘삼강행실도’를 반포했으며 우리 선현은 범국민적 효 사상의 함양을 위해 어버이날을 제정했다. 세계 인류를 위해서도 효의 불씨는 꺼서는 안 된다. 토인비 같은 역사철학자는 한국의 가족제도와 효 사상을 세계에 널리 번지도록 알리라고 강조하지 않았는가.
효를 외면한 채 길러진 민주시민의 겉모습은 인간일지 모르나 내면은 짐승일 것이다. 효 사상이 민본주의요, 민본주의가 민주주의임을 모르고 본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으니 성균관을 비롯한 전국 234개 향교부터 폐쇄하고 어버이날도, 민족의 대명절 추석도 함께 없애는 법을 제정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효 사상을 배제해야만 민주적인 인성을 갖춘 시민교육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