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에 사는 신혼부부 김가영(32)씨와 박진호(35)씨는 최근 구청에 혼인신고차 갔다가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이들이 받은 선물은 태극기였다. 태극기 달기 운동을 꾸준히 추진해 온 강북구청은 작년부터 국기선양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관내로 전입하거나 혼인신고를 하면 태극기를 지급하고 있다. 김씨는 “국경일에 태극기를 달고 싶어도 없어서 달지 못했다”면서 “뜻밖의 선물을 받은 만큼 이번 광복절에는 태극기를 꼭 달겠다”고 말했다.
전국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8.15 광복절을 앞두고 태극기 게양률을 높이기 위해 각종 행사를 쏟아내고 있다.
지자체들이 앞다퉈 태극기 이벤트를 준비하는 이유는 국경일 태극기 게양률이 매우 낮아서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현대사회에서 애국주의가 많이 희석된 데다 촛불시위에서 태극기가 친박의 상징으로 부각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실제로 서울경제신문이 성인남녀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해 보니 광복절에 태극기를 달겠다고 응답한 사람은 14명에 불과했다. 태극기를 달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응답자 3명 가운데 1명꼴로 ‘태극기 자체가 없어서(32.3%)’라고 답했다. 이어 ‘게양시설 미비(29%)’, ‘게양할 필요성이 없어서(12.9%)’, ‘귀찮아서(9.7%)’ 등의 순이었다.
일부 지자체들은 이처럼 광복절을 앞두고 일상에서 잊히고 있는 태극기의 가치를 되새기자는 취지에서 각종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는 오는 15일부터 21일까지 태극기 달기를 독려하기 위해 공동주택 단지 출입구에 ‘태극기 달기 홍보 부스’를 운영한다. 또 휴대전화로 태극기와 자신의 얼굴이 나오도록 찍은 사진을 현장에 제출하면 코엑스, 메가박스 등 입장료를 할인해주는 ‘인증샷’ 이벤트도 진행한다. 강북구도 지난 3일 가정용 태극기 꽂이 1,250개를 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한 데 이어 오는 15일 광복절에 태극기 달기 운동에 동참하기로 한 주민들에게 가정용과 차량용 태극기를 나눠줄 예정이다. 강남구 관계자는 “모든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광복절 의미와 애국심을 되새기자는 취지에서 태극기 달기 행사를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일방적인 태극기 달기 운동이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직장인 김정우(28)씨는 “태극기를 안단다고 해서 국경일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며 “1인 가구라 태극기를 달 곳도 없고 무조건 달라고 강요하는 것은 억지다”고 반감을 나타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간 주도는 괜찮지만 관 주도의 태극기 달기 운동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며 “특정 지자체가 시대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 이런 것들을 살펴보지 않고 태극기 운동을 진행하면 관에 대한 반감만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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