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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탈원전 정책의 안보적 함의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건양대 군사학과 교수

1991년 '농축·재처리포기' 영향

미·중 협조 없인 국가 존폐 기로

자위적 핵무장 카드마저 포기 땐

안보 비대칭 극대화 '자승자박'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정부가 ‘탈원전’ 표방과 함께 신고리 5·6호기의 공사를 중단시키면서 원자력 존폐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찬반 의견은 주로 경제와 환경 차원에서 개진되고 있다. 탈원전을 찬성하는 쪽은 일부 선진국들도 안전과 환경보호를 위해 원자력 발전을 포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 방사능 폐기물 처리, 수명을 다한 원전의 철거, 생태계 보호 등을 위한 비용을 합치면 원자력이 경제적으로도 저렴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설득력이 충분한 것 같지는 않다. 원자력은 에너지 빈국인 한국을 경제 대국으로 성장시킨 밑거름이었고 지금은 수출과 일자리 창조를 견인하는 효자 산업이다. 오늘날 한국 원전은 초일류 수준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인정받아 수백조 달러 규모의 세계 원전건설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적지 않은 지식인과 전문가들이 탈원전 발표에 경악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특히 탈원전은 환경·경제 논리만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며 안보·외교 차원에서도 충분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 우선 지난 1991년 ‘농축·재처리 포기’를 선언한 비핵화 선언이 초래한 결과를 되짚어봐야 한다. 당시는 북한이 핵무장을 위해 플루토늄 생산을 시도하던 시기였다. 전문가들은 농축과 재처리는 원자력 선진화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합법적 공정이며 급박한 상황이 도래했을 때 ‘핵무장 가능성’을 외교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살려둬야 할 핵 잠재력이라는 사실을 강변했다. 따라서 비핵화 선언은 미래의 잠재력을 소멸시키고 남북 간 비대칭 상황을 악화시키는 자해(自害) 행위가 될 것으로 경고했다. 노태우 정부는 경청하지 않았고 이후 북핵 문제는 경고대로 진행됐다. 한국의 핵 위상은 북핵의 ‘핵심적 피해 당사국’이면서도 ‘비핵심적 해결 당사국’이 돼 미국의 핵우산과 중국의 협조에 의존해야 하는 ‘안팎 곱사등’이 되고 말았다.

현재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거머쥐고 한국의 대화 제안을 거부한 채 ‘핵무력 강화의 길을 계속 가겠다’고 거드름을 피우고 있으며 중거리미사일로 괌을 위협하고 대륙간탄도탄으로 미국 여론을 압박하면서 한미 동맹을 이완시켜 미국을 한반도로부터 이탈시키려는 대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기 위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중국과 러시아의 이중 플레이에 막혀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속에 러시아가 중국에 편승하는 현 동북아 신냉전 구도가 지속되는 한 북한 정권의 생존을 돕는 중러의 ‘어깃장 행보’는 근절되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몸집과 근육을 키운 중국은 ‘미국 견제’와 ‘한국 길들이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노리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에 나서고 있다.



이렇듯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남북 관계를 왜곡시키고 미국의 동맹정책을 뒤흔드는 게임체인저로 부상하고 있다. 오만한 강대국들과 불통의 북한 사이에 낀 한국은 북한의 핵 위협에 시달리면서 중국의 ‘코리아 배싱(한국 때리기)’에 전정긍긍하고 미국의 ‘코리아 패싱(한국 배제)’까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이 상황에서 탈원전이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노태우 정부의 농축·재처리 포기는 원자력에서 원폭으로 가는 경로를 차단하는 ‘불임(不姙) 시술’이었다. 한국 원자력이 ‘농축·재처리 부재’라는 불구를 안은 채 선진화를 이루고 고급인력을 양성해낸 것은 기적이고 그래서 필요하면 ‘가임(可姙)’으로 전환시킬 능력을 머금고 있다. 그것이 마지막으로 남은 잠재력이다. 북한이 핵 게임을 포기하지 않고 중국이 끝내 북핵을 방조한다면 한국은 자위적 핵무장 가능성을 외교 카드로 사용해야 할지도 모르며 국가가 존폐의 기로에 선다면 이스라엘식 결단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원자력이 가지는 이런 안보적 함의를 중시한다면 정부는 한국 원자력의 잠재력을 유지 발전시키는 선택을 해야 하며 목표도 탈원전이나 ‘제로 원전’이 아닌 ‘불필요한 원전 확충 자제’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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