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내 대표적 진보법관인 김명수(58·사법연수원 15기) 춘천지법원장이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되면서 그가 이끌 사법부의 미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 후보자는 ‘법관이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야 인권과 자유가 보호된다”는 철칙을 최근 공개하며 법관 독립성 강화에 방점을 둔 제도 개혁을 강조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미국·독일식 제도 도입을 전망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지난 3월 연세대에서 열린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행사 축사에서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는 법관이 간섭 받지 않는 한도 안에서 보호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사법부 독립은 법치 확립을 뜻하며 여기에는 법관 개인의 독립도 포함된다는 점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법관 인사제도는 완벽하다 할 수 없고 제도를 통해 법관이 법원 안팎의 간섭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는 게 김 후보자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그는 “법관의 독립은 국내법뿐만 아니라 국제법적인 판단에 대해서도 적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관 독립’을 지향점으로 짚은 김 후보자의 선언적 발언을 놓고 법조계 안팎에서는 김 후보자가 대법원장과 그 휘하에서 사법행정을 독점한 법원행정처의 권한을 쪼개는 데 주력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현재 대법원장은 전국 판사 2,900여명에 대한 임명권과 대법관 임명제청권, 헌법재판관·중앙선거관리위원 지명권 등을 비롯해 사법행정의 최고 책임을 지고 있다. 김 후보자를 비롯한 법원 내 진보 성향 판사들은 그동안 “제왕적 대법원장과 관료화된 사법행정이 법관 독립을 침해한다”고 비판해왔다.
각급 법원 대표들이 모인 전국 법관대표회의는 이미 대법원장 권한 쪼개기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대표회의를 상설·제도화하면서 사법행정과 법관인사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특히 대표회의는 미국과 독일 사법부의 제도를 모범으로 검토하고 있다. 미국은 항소법원장과 지법 판사 대표가 참여한 법관 대표회의가 사법행정 최고기구다. 미국 법원행정처는 대표회의가 결정한 사항의 집행만 담당한다. 또 대법원장이 연방판사 임명에 관여하지도 않는다. 독일은 각급 법원 인사와 운영에 해당 법원 판사들로 구성된 법관인사위원회가 관여하는 구조다.
이런 가운데 법원 일각에서는 김 후보자와 진보 성향 법관들의 행보를 우려스럽게 바라보기도 한다. 당장 대법관 가운데 9명이 연수원 선배 기수일 정도로 김 후보자 지명이 파격 인사인데다 그가 1·2대 회장을 지낸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과 일선 법관들이 갈등을 빚는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지방법원 판사는 “법관들이 독립성 강화를 위한 개혁에 뜻을 모은다 해도 정치권과 국민 여론을 설득해야 하는 또 하나의 산이 있다”며 “김 후보자가 사법부 안팎의 혼란과 갈등을 잘 조율하며 개혁을 추진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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