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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골프여제 박인비] "남이 나를 신경쓰는 시간은 짧아...그것 때문에 도전 포기 못하죠"

리우올림픽 출전권 논란 터진 후

주변 시선 의식하다 심한 맘고생

누가 뭐라든 후회없이 도전하자

생각 바꾸니 골프인생도 달라져

어릴 적 희망직업란에 '현모양처'

골프 안했다면 주부로 살았을 것

지금은 골프인생 후반홀 어디쯤

정상서 깜짝은퇴후 제 길 찾아간

로레나 오초아의 인생 닮고 싶어





‘골프여제’ 박인비(29·KB금융그룹)를 만난 지난 22일은 그가 올림픽 금메달을 딴 지 1년하고 딱 하루가 지난 날이었다.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박인비는 마지막 퍼트를 넣은 뒤 고개를 젖히고 두 팔을 쭉 뻗었다. 우승이 익숙한 그에게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던 격정적인 세리머니였다. 116년 만의 여자골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골프여제’ ‘침묵의 암살자’는 ‘골든 그랜드슬래머(메이저 4개 대회 우승+올림픽 금메달)’라는 영예로운 별명 하나를 더 얻었다.

해외 언론에서는 “박인비가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여전히 ‘쌩쌩한’ 현역이다. 그랜드하얏트인천호텔에서 인터뷰를 마친 그는 곧장 출국 비행기에 올라 휴식기를 마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합류했다.

올림픽 얘기를 꺼내자 박인비는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아, 벌써 1년이네요. 올림픽에 참가하기 직전까지 정말 죽을 맛이었는데 넘기고 나니까 새로운 세상이 열리더라고요. ‘역시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구나’라고 절실하게 느꼈죠.”

잘 알려졌듯 박인비는 올림픽 직전까지 “출전권을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숱하게 들었다. 심각한 손가락 부상으로 LPGA 투어 대회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고 경쟁력 있는 후배들이 줄을 서 있었다. 박인비는 그러나 보란 듯 2위와 5타 차의 압승으로 금메달을 깨물었다. 두 달간 오로지 올림픽을 위한 ‘특훈’을 강행했고 올림픽 기간에는 숙소 옥상에서 빈 스윙 연습으로 밤을 밝혔던 박인비다.

당시 리우에서 취재 중이던 기자를 만나 “손가락이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을 다하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밝히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일각의 우려와 비판을 투혼의 금메달로 극복해낸 진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박인비는 “골프 선수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건 맞지만 어차피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돌아봤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비판하고 비난할 때 그중 상당수는 그냥 지나가면서 던지는 말들이잖아요. ‘남이 나를 신경 쓰는 시간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길지 않다’ ‘어쩌면 5분도 안 되는 그 시간 때문에 내가 죽을 만큼의 부담을 느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거죠.” 박인비는 “그전까지 골프 선수로서 생각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올림픽 뒤 부상이 악화해 골프 인생을 접는 한이 있더라도 도전에 후회는 없을 것 같았다”고 돌아봤다.

2008년 만19세 11개월 17일의 US 여자오픈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우며 세상에 이름을 알린 박인비는 그 후 3년간 우승 없이 슬럼프를 겪었다. 당시의 슬럼프보다 올림픽을 앞두고 받은 중압감이 열 배는 더 무거웠다고 한다. “일단 보는 눈이 훨씬 많아졌잖아요. 샷을 한두 개 잘 못 쳤을 때의 창피함이 그전 슬럼프 때 10이었다면 지난해는 100이었어요.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니까 점점 더 괴로워졌던 거죠.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을 살아주는 것도 아닌데 너무 신경 쓰고 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하게 된 거 같아요.” 그는 “골프를 잘 쳐서 유명해지는 건 물론 좋지만 공인으로 살지 않는 방법은 없나 고민하던 때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박인비는 올림픽 이후 골프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금메달리스트라는 타이틀 때문은 아니다. “사람들 앞에서 ‘굿샷’을 못 칠 때는 여전히 속상하기도 하지만 주변의 평가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한결 여유로워졌다”고 했다. 박인비는 올림픽을 마치고 집중 재활기간을 거친 뒤 필드에 복귀했고 단 2개 대회 만에 통산 18승(3월 HSBC 챔피언스)째를 올렸다. 그는 “지금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투어 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제 골프가 어떻게 하면 더 향상될 수 있을까에만 집중하고, 더 발전할 계기를 찾는 데만 몰두하고 있는 지금의 이 시간이 정말 소중한 것 같아요.”



벌써 LPGA 투어 11년 차. 박인비는 “골프 인생의 후반 9홀 중 어딘가에 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상금왕, 올해의 선수상, 골든 그랜드슬램은 물론 이미 LPGA 명예의 전당에도 올랐지만 구체적인 은퇴 계획은 아직 없다. 결과적인 부분 때문에, 특정 대회의 우승을 해보고 싶어서 골프를 계속하는 건 아니라는 박인비는 “지금은 골프를 치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하고 저 자신이 이 위치에 있는 게 어울린다고 믿고 있다. 주변 분들의 조언도 듣겠지만 내려올 시기는 전적으로 제가 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톱에서 언젠가는 내려와야 하는 게 당연한데 잘 내려오고 싶어요. 자연스럽고 많이 힘들지 않게, 그렇게 그냥 조용히…. 솔직히 어린 친구들과 샷 거리 차이도 많이 나고 힘든 부분이 있지만 그런 핑계를 대고 싶지는 않습니다.”

올림픽 2연패 도전에 대한 생각은 이렇다. ‘그때(2020년)까지 기량을 유지할 수 있다면 도전하겠다’는 것. “올림픽에 나갈 만한 경쟁력이 갖춰졌는지는 누구보다 저 자신이 잘 알 것 같아요. 이르면 내년쯤에는 나가는 쪽으로 초점을 맞추거나, 그 반대이거나 둘 중 하나를 결정할 수 있을 겁니다.”

골프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박인비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박인비는 “어릴 때 희망직업란에 ‘현모양처’라고 적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주부로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나아가 “은퇴하고 나서 펼쳐질 가정주부로서의 삶을 정말 많이 기대하고 있다”고도 했다. “저는 요리를 정말 못 하지만 동생이 영국에서 와인과 음식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거든요. 나중에 부지런히 배워야죠. 아이는 은퇴하고 가질 생각이고요.”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박인비는 중고교 시절 내신성적(GPA)이 늘 3.5 이상이고 대학수학능력시험(SAT) 때 수학을 두 문제밖에 틀리지 않을 정도로 공부도 곧잘 했다. 그렇지만 골프 외에 특별한 직업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고. 그는 “숙제도 학교에서 미리 해치우고 집에 가면 노는 데 몰두하는 아이였다. 다른 건 몰라도 암기력은 꽤 좋았었다”며 웃어 보였다.

골프 꿈나무들의 롤모델 1위인 박인비에게도 롤모델이 있다. 2010년 스물아홉의 한창나이에 정상에서 깜짝 은퇴한 전 세계랭킹 1위 로레나 오초아(36·멕시코)다. 남의 눈을 신경 쓰지 않고 행복을 찾아서 갈 길을 가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고.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게 뭔지 귀 기울일 줄 아는 선수였어요. 저는 주변을 배려하는 스타일이라고 나름대로 ‘포장’하며 살지만 사실 주변에 휘둘릴 때가 많거든요. 오초아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골프 선수로서 최종 목표는 ‘모범이 됐던 운동선수로 기억되는 것’이다. “모범이 된다는 건 쉽게 말할 수 있으면서도 정의하기도, 실현하기도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위치에서 진짜 모범이 되는 선수가 되기 위해서 더 연구해야죠.”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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