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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스포츠문화
[토요워치]'책만 판다고?' 서점, 문화와 관계 판다···젊은 창업자들의 작은 책방, 서점업 진화 주도

■작은 서점의 진화

뚜렷한 개성과 전문성을 소비하는 공간으로서 서점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북파크. /송은석기자




디지털 세상이 오면서 만지고 체험하는 아날로그 세계가 벼랑 끝에 몰렸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동네서점들이 비디오가게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팽배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독서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데다 대형마트와 대형서점의 사세 확장에 이어, 온라인 서점이 할인과 사은품으로 독자들을 끌어 모으면서 동네 책방들이 하나 둘 문을 닫았다.

하지만 비디오 가게와 달리 동네서점은 멸종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은 서점의 부흥을 이야기한다. 직장인들이 퇴근 후 책방으로 모여들고 저자를 만나거나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맥주나 커피를 홀짝이며 책을 읽는다. 수요는 공급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태원 해방촌, 연남동, 이대 앞(대현동) 등 젊은이들의 거리를 중심으로 생겨나던 서점들이 이제는 마을로, 지방으로, 쇠락한 구 도심으로 침투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 작은 영화관으로 변신하는 작은 서점 ‘퇴근 후 책 한잔’. /송은석기자


◇서점, 매주 한 개 꼴로 문 연다

요즘 서점업계에서는 “한 주에 하나 꼴로 서점이 생겨난다”는 말이 있다. 물론 서점업 전체로 보면 감소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발간한 ‘2016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참고서, 문제집 등을 주로 취급하던 동네 서점들의 감소 추세가 이어지면서 전국 서점수는 2015년말 기준 1,559곳으로 2년만에 66곳 줄었다. 그러나 범위를 독립서점, 전문서점 등 작은 서점으로 좁혀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출판문화진흥원을 통해 집계한 복합·전문서점 현황에 따르면 책 이외의 다양한 물품이나 식음료를 파는 복합서점은 지난해 11월 기준 102곳으로 전년 대비 31곳이 늘었다. 독립출판물 등을 판매하는 순수서점을 포함한 동네서점 지도 앱 제작사인 퍼니플랜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말까지 1년간 새로 생겨난 서점 수가 53개, 올 한 해에만 31곳으로 집계됐다. 실제 숫자는 이보다 많을 것이라는 게 업계 정설이다.

서점 창업 열기도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서 진행하는 서점 전문 인력 양성 프로그램인 ‘서점학교’는 통상 회당 5명 정도가 참가했지만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30~40명씩 몰리며 창업 열기를 실감하게 했다. 이 같은 열풍에 힘 입어 서점 전문인력 양성 과정도 늘고 있다. 서울도서관 등 공공기관은 물론 스토리지북앤필름 등 독립서점에서도 서점 예비 창업자를 위한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서점이 늘고 있는 것은 독립서점 내지 전문서점으로 분류되는 이들 작은 서점(비프랜차이즈 서점을 독립서점, 전문서점, 동네서점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부르고 있으나 아직 용어가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관계로 이 기사에서는 비프랜차이즈 서점을 대형·온라인서점과 구분해 작은 서점으로 통칭한다)이 대형 서점들이 제공하는 책 할인과 무료 배송, 화려한 디스플레이 이상의 가치로 독자들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진화를 통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서 새로운 고객층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방증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지금의 창업 열기가 종로서적 등 대형서점 등장, 지식인층이 주도한 사회과학 서점 등장에 이은 제3차 인재유입 시기라 새로운 서점 문화가 형성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장 대표는 “지금의 서점 창업자들은 책과 다른 콘텐츠를 결합하는 문화기획자들”이라며 “콘텐츠 연출력을 바탕으로 독자와의 관계를 단단하게 만들어내는 서점들이 서점의 진화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기도 판교의 책맥 서점 북바이북에서는 책꼬리를 통해 독자들에게 책을 소개한다. /정혜진기자


◇책방, 정신적 허기를 달래다

최근의 미디어 트렌드를 들여다보면 알쓸신잡, 어쩌다 어른, 차이나는 클래스 등 강의나 토론을 예능과 결합한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들이 각광받고 있다. 높은 지식 수준을 자랑하는 뇌섹남과 뇌섹녀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최근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가 됐다. 대중의 욕망 목록에 해박한 지식을 겸비하는 것이 추가됐다는 의미다. 그리고 작은 서점들은 현대인들의 지적 허기가 발생하는 지점을 정확하게 파고들고 있다.

독서와 배움은 먹는 행위 못지 않게 바쁜 현대인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정신적 허기를 달래는 주요 활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식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 펼쳐 드는 것은 책이요, 찾아가는 곳은 책방이나 문화센터, 강연장류의 지식 아지트다. 여기서 책방은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니다. 독서모임, 저자와의 만남, 다양한 강연 프로그램을 통해 보고, 듣고,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실제로 20~30대 젊은 여성들은 인문학부터 글쓰기까지 다양한 강연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와 관련 매년 ‘트렌드 모니터’ 시리즈를 발간하는 마크로밀엠브레인의 송으뜸 과장은 “최근 젊은이들이 정신적 허기를 채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취미생활을 영위하고 원데이 클래스나 강의 등에 참여한다”며 “서점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특히 눈여겨볼 점은 독립서점에 가는 행위 자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타인과 자신을 차별화하는데 활용한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공릉옛철길에 자리한 동네서점 51페이지 /서은영기자


이들 작은서점의 활동은 전통적인 서점의 규격을 벗어나 더욱 과감해지고 있다.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땡스북스는 서점만의 색깔을 담은 독립출판물을 직접 찍어내고, 예약 상담을 통해 책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고 책을 추천해주는 사적인 서점, LP감상회, 책 제본수업, 블루레이 상영회까지 매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까지 서점의 활동 영역은 점차 광범위해지고 있다. 대형 서점의 서가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책들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 역시 이들의 강점이다. 서울 녹번동의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초판본 등 쉽게 찾기 어려운 희귀 책들을 매입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문학 전문 서점 고요서사 입구에선 40여년 역사의 대표 고전명작 시리즈인 범우문고가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내보이며 독자들을 맞는다.

물질 소비 중심에서 정신적 만족감을 중시하는 경험 소비의 시대로 이동하면서 각 공간이 가진 뚜렷한 개성과 전문성을 소비하는 공간으로서 서점의 가치도 새롭게 조명된다. 특히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책을 한 권 고르고 실패할 여유조차 없는 현대인에게 믿을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콘텐츠 커넥터의 역할은 갈수록 커진다. 여기서 콘텐츠 커넥터란 중요한 정보를 빠르고 넓게 확산되도록 돕는 매개자들로 최근 생겨나는 서점에 부여된 주요 역할 중 하나다. 최인아책방의 서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각계 유명인사의 추천 책은 추천자들과 간접 소통을 통해 책을 추천받을 수 있는 창구가 되고 북바이북의 서가에 붙은 ‘책꼬리’는 마치 온라인 쇼핑몰에서 다른 고객들의 상세 구매평처럼 독자들이 우연히 발견한 책을 선뜻 구매하도록 돕는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은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을 읽는 대신 나만의 독서 취향을 쌓길 원하는 지금 세대에게 서점 주인의 큐레이션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독서 취향이라는 것은 단기간에 생기기 쉽지 않은데 지적 허기를 채우려는 욕구가 커질수록 서점의 큐레이션에 대한 의존도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서점의 멸종 위기에도 살아남은 동네서점과 최근 생겨나는 서점들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지역성이다. 속초 동아서점, 대전 계룡문고, 충주 책이 있는 글터 등은 지역을 대표하는 오랜 역사의 서점들로 지역민들은 물론 여행객들의 발길도 끌어당기고 있다. 급속도로 사라진 다른 지역의 서점들과 달리 이들이 지금까지 건재한 배경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서점으로서의 상징성에 더해 지역 출신 작가의 책을 적극 소개하고 블로그,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지역 알리미 역할을 자처하는 등 적극적인 지역활동이 한몫했다. 경주 황남동의 책방 지나가다, 노원 공트럴파크(공릉 옛 철길에 조성된 공원을 이르는 신조어)의 터줏대감이 된 51페이지 등은 신생 서점이지만 지역사회에 녹아들면서 지역민들의 사랑방이자 지역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지역 내 소비, 생활반경에 있는 공간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최근의 소비 트렌드와 궤를 같이 한다.

이태원 해방촌의 문학 전문 작은책방 고요서사 /서은영기자


◇취향 공동체의 요람

각양각색의 서가 구성과 인테리어는 그 자체로 무한복제 시대를 거부하는, 이른바 반문화(Counter Culture)의 상징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표준화된 서비스와 제품을 찍어나는 프랜차이즈에 대해 지금의 젊은 세대는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대신 불확실하고 결점이 많지만 각기 다른 개성이 묻어나는 아날로그 감성의 공간에 프리미엄을 준다.

최근의 서점들은 주인장의 취향과 개성이 빚어낸 소우주로서 고객과 소통한다. 이 같은 변화를 가장 뚜렷하게 반영하고 있는 서점들이 바로 전문서점이다. 유희경 시인이 운영하는 시 전문 서점 위트앤시니컬, 추리소설 전문 서점 ‘미스터리 유니온’ 청소년 인문학 서적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부산의 인디고서원, 음악 전문서점 초원서점, 독립출판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유어마인드 등은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겸비하고 관련 콘텐츠를 선별·추천하는 서점 주인이 그 자체로 매력 포인트다. 20년간 독서인구가 줄고 출판시장 기운 사이 일반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마니아들이 즐길만한 깊이 있는 콘텐츠를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나 전문서점은 다르다. 특정 분야를 파고들면서 제공하는 정보의 깊이는 더욱 깊고 세밀해졌다. 궁극적으로 이들이 꿈꾸는 것은 고양이든, 음악이든 특정 테마로 사람이 모여들게 하는 플랫폼이다.

이들 서점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소셜미디어 채널을 통해 고객 반경을 넓히고 디지털 영역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다. 문화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색스가 ‘아날로그의 반격’에서 소개한 ‘포스트디지털경제’라 칭할만한 변화다. 서점은 가장 아날로그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지만 최근 서점들은 아날로그의 향취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정보기술(IT) 영역에서 강조하는 사용자 경험(UX) 중심의 공간 구성을 통해 과거의 서점과 차별화하고 있다. 디자인 문구류나 소품을 넘어 커피나 맥주 등 음료를 파는 서점 형태 역시 UX를 중심에 둔 변화다. 아날로그 특유의 정서적 만족감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고객 행동반경에서 예상되는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서비스를 통해 공간을 기획하고 구성한다는 의미다.

책맥 트렌드를 만들어낸 북바이북의 성공 스토리는 마치 IT기업과 유사하다. 북바이북은 정식 오픈 전 IT기업에 베타서비스를 하듯 사전 고객 모집에 공을 들였다. 고객들의 반응에 즉각 대응한 점 역시 효과적이었다. 고객들은 자신들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공간에 만족했고 단골이 됐다. 북바이북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큐레이팅은 물론 서점 내 다양한 행사와 운영에 독자들이 참여할 창구를 만들었다.

진화된 서점 모델을 보여주고 있는 상당수 작은 서점 창업자들은 스스로를 ‘기획자’ ‘스타트업 창업자’라고 소개한다. 서점 진화의 힘은 아이디어와 기획력에 실행력까지 갖춘 젊은 창업자들이 시장에 진출하면서 시작된 셈이다. 51페이지 김종원 대표가 ”서점 경영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샘솟는 기획자여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최근 두드러진 서점의 진화는 시장창조의 관점에서 ‘서점이 무엇을 팔 것인가’ 대신 ‘고객이 무엇을 살 것인가’를 고민한 데서 나온 결과물이다.

/서은영·정혜진·우영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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