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시로 여는 수요일] 차가운 사랑

정세훈 作





차가운 사랑이

먼 숲을 뜨겁게 달굽니다

어미 곰이 애지중지 침을 발라 기르던

새끼를 데리고 산딸기가 있는 먼 숲에 왔습니다

어린 새끼 산딸기를 따 먹느라 어미를 잊었습니다

그 틈을 타 어미 곰

몰래 새끼 곁을 떠납니다

어미가 떠난 곳에

새끼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놓였습니다

버려야 할 때 버리는 것이



안아야 할 때 안는 것보다

더욱 힘들다는 그 길이

새끼 앞에 먼 숲이 되어 있습니다

탯줄을 끊어 자궁 밖 세상으로 내놓던

걸음마를 배울 때 잡은 손을 놓아주던

차가운 사랑이

먼 숲을 울창하게 만듭니다

밤낮으로 먹이를 물어다주던 어미 새가 야멸차게 떠나는 걸 본 적 있다. 마른 젖가슴 파고드는 새끼 고양이에게 날카로운 이빨 드러내며 쫓아내는 어미 고양이를 본 적 있다. 아들딸 수십 명씩 까맣게 틀어박혀 있는 단칸방을 수류탄처럼 터트리는 봉숭아를 본 적 있다. 나는 자전거 짐받이를 잡아주던 형이 슬그머니 손을 놓아버린 뒤 지금껏 혼자서 달리고 있다. 손잡아 준 힘으로 걸음을 배우지만, 손 놓아준 믿음으로 혼자 걷는다. 인생 팔십에 삼십 년씩 자식 손 놓지 못하는 어떤 호모 사피엔스들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차가운 이야기다. <시인 반칠환>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