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공약이었지만 정작 정부청사 소속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부터 삐걱대면서 공공 부문 정규직화가 제대로 시행될 수 있겠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당장 정부청사 소속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를 논의하는 첫 협의회의에서 정년과 임금 수준, 신분 문제 등을 놓고 심한 갈등을 드러냈다. 이로 인해 정부가 이달 말 비정규직 실태조사 결과와 공공 부문 정규직 전환 로드맵을 발표하고 최대 20만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청사관리본부와 노조 측의 견해차라는 암초를 만나면서 연내 시행은 물론 이에 보조를 맞추려던 공공기관까지 연쇄적으로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18일 행정안전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지난 15일 행정안전부 소속 정부청사관리본부 주최로 ‘정부청사 정규직 전환 협의회’ 첫 회의가 개최됐다. 정부가 7월20일 발표한 ‘공공 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 만든 협의회로 연말까지 정규직 전환 대상과 방식·시기·임금체계 등을 정할 예정이다. 정규직화를 주도하는 정부부처 소속 근로자들의 회의체인 만큼 이제 막 협의체를 구성하는 다른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정부부처가 만드는 정규직화 방법론인 만큼 또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첫 회의부터 공공 부문 정규직화의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했던 문제가 그대로 떠오르면서 정부부처의 정규직화는 난항을 예고했다. 대표적인 문제로 정년과 임금 수준, 신분 문제가 꼽힌다.
가장 큰 쟁점은 정년 문제다. 정부는 ‘정부청사 정규직 전환 기준안’을 내세워 정규직 전환 근로자(무기계약직)의 정년을 만 60세로 제시했다. 여기에 본인 희망에 따라 심사를 거쳐 1년 단위 기간제로 계속 근무할 수 있는 안을 냈지만 근로자들은 ‘현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반박했다. 청소 등을 위주로 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대부분 50~60대로 고연령층인 점을 고려하면 ‘정규직화=퇴직’을 의미한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예산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기존 근로자 정년 연장 시 신규 취업이 제한된다”며 반론을 펼쳐 정년을 두고 노사 간 갈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임금 문제 역시 앞으로 협상 과정의 시한폭탄으로 꼽힌다. 청사본부는 호봉급제로 2018년도 임금 기준(시급 7,530원·월급 157만원)을 준수하는 ‘기본 방향’을 밝혔다. 그러나 비정규직은 현행 임금이 최저임금 수준으로 열악해 정규직화의 장점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고 호소한다. 정부는 기존 용역회사가 관리비 명목으로 받아가던 비용이 임금에 더해지면 여건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 역시 정규직화에 따른 복지비 상승 등으로 비용이 증가하면 임금에 녹아들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드러난 갈등은 신분이다. ‘정부가 고용한 민간인’이라는 어정쩡한 위치가 근로자들을 상황에 따라 불리한 위치에 놓을 수 있다는 것.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공공 부문 비정규직은 기간제 19만명과 파견·용역 12만명 등 모두 31만명이다. 하지만 정부청사 협의회에서 드러난 갈등들이 각 기관 정규직화에도 공통으로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앞으로 노사 협상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정부청사 협의회의 한 위원은 “앞으로 논의 과정에서 갈등이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세종=임진혁·박형윤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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