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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과 협연하는 '클래식 지휘자' 임헌정 "문화 발전은 이질적인 문화가 만날때 생겨"

28일 '2017 마스터피스' 공연

서양음악·국악 가를 필요없어

예술은 좌우·상하 없는데…

블랙리스트 논란 창피한 일





“여름, 시골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함. 저는 적막한 그 순간이 너무 그리워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지휘과 교수이자 ‘말러 교향곡 전곡 시리즈’로 전국에 ‘말러붐’을 일으켜 지방 교향악단이던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한국을 대표하는 3대 교향악단으로 끌어올린 그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오케스트라와는 정반대인 ‘적막’이 그립다고 했다. 오는 28일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함께 ‘2017 마스터피스 - 임헌정’으로 관객을 찾는 클래식 오케스트라의 마에스트로, 임헌정 지휘자다. 그의 말처럼 고요한 남산 중턱, 국립극장에서 약간은 어색한 가야금과 함께 리허설을 마친 그를 서울경제신문이 만났다.

임 지휘자에게 음악의 원동력은 바로 ‘고향’이다. 충주에서 태어나 제천, 원주를 거쳐 서울로 상경한 그는 “옛날 시골에서는 여름에 날파리, 하루소리 지나가는 소리도 들렸다”며 “그런 무섭고 쓸쓸하기도 한 적막한 감수성이 지휘할 때, 작품을 쓸 때, 음악을 해석할 때 영감을 샘솟게 하는 원동력”이라 말했다. 그는 말러, 브람스, 베토벤 등 그가 지휘한 음악의 작곡가 모두 이러한 감성을 공유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아이 놀고 부는 하모니카는 옥수수를 가지고서 만들었어요’로 시작하는 동요 ‘옥수수 하모니카’를 부르며 “이처럼 어릴 때 보이소프라노로 어린이 찬송을 부르던 야릇한 추억이 그립다”고 회고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공연의 첫 곡이 바로 ‘동심의 세계’다. 우리가 잘 아는 ‘고향의 봄’ 등 동요가 그의 지휘 아래 국립관현악단의 오케스트라로 연주된다. 그는 “음악, 특히 동요는 사람의 영혼을 정화(Purify)한다”며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그래서 비브라토(악기 연주나 성악에서, 음악을 가늘게 떨어 울리게 하는 기법)도 절제했다. “보이소프라노의 성가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소년의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다”는 그는 “물론 필요할 때는 더 크게 (비브라토를) 해야겠지만, 아무런 음악적 요구가 없는데 습관적으로 비브라토를 넣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외국인이 작곡한 가야금 연주곡 ‘흩어진 리듬’, 전래민요 ‘새야새야 파랑새야’를 주선율로 하는 황호준의 ‘바르도’, 강서대묘 사신도 벽화에서 영감을 받은 ‘영원한 왕국’ 그리고 임 지휘자가 비밀이라고 기자에게 귀띔한 한 곡이 무대에 오른다.



임 지휘자가 처음 국립국악관현악단과의 협연 제의를 받은 건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황병기 예술감독이 제의했지만 “양심이 있어야지, 악기도 모르는데 자신 없어요”라고 말하며 고사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국악을 맡게 된 건 국립극장 안호상 전 극장장과의 인연 때문. ‘말러 사이클’ 당시 안 극장장은 예술의전당 공연기획부장으로 임 지휘자는 부천필하모닉 상임지휘자로 의기투합했다. 안 극장장은 지금도 ‘말러 열풍’을 제일 자랑스러워 할 정도로 당시 무대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임 지휘자는 안 극장장에 대해 “말러를 하자고 제안했을 때, 나를 믿어준 사람”이라며 “사실 9개나 되는 말러 교향곡 전곡을 기획한다는 것은 말러라는 사람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엔 도박과 같은 일”이었다 밝혔다. “황병기 전 예술감독, 안 극장장, 원일 예술감독이 자꾸 설득하는데, ‘그래 똑같은 음악인데 한번 해 보자’는 마음으로 국악을 시작했다”는 그는 “막상 해보니 또 다른 재미가 있다”며 웃었다.

“모든 문화적 발전은 이질적인 문화가 만날 때 생긴다”는 그는 “유럽의 찬란한 문화도 로마 문화권과 기독교가 만나면서 생겼다”며 “사실 음악은 다 같은데 누구는 서양음악가, 누구는 국악가 이렇게 편을 가를 필요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국악은 정말 개방적이고, 활발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분야”라며 “리허설을 할 때도 국악기 연주자분들이 제 말 한마디 한 마디를 귀 기울여 주신다”고 고마워했다. ‘전혀 다른 분야인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라고 기자가 묻자 그는 “물론 악기의 특성이 다른 점은 아직도 어렵다”면서 “우리 악기들이 분절식(한음 한음 뚜렷하게 떨어져 있는 방식)이 아니라 이어져 있는 등 그 특징들을 아직도 계산하고 공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이 또한 재미있다고 강조했다. 임 지휘자는 “이 악기는 어떻게 소리가 나올까. 이런 상상력이 있으니 음악이 재미있지 않을까요”라 반문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사람은 착하고 순수해야 한다”며 “그 중심에는 예술, 그리고 음악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만큼 그는 현재 문화계를 뒤흔드는 블랙리스트 논란을 아쉬워했다. 이런 행위를 한 국가와 예술계 모두 창피하다는 그는“‘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 할 수 있는 자유에서 해학과 풍자, 예술이 시작된다”며 “국가가 내편, 네편 안 가르고 지원하다 보면, 독자가 알아서 가짜와 진짜를 구별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예술은 좌, 우, 상, 하 다 없다”며 “예술가 역시도 괜히 진영에 빠져서 상대방 공격하는 것보다는 묵묵히 자신의 세계를 탐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예술은 상상력과 추상력을 통해 영혼을 정화하는 일이에요.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예술이 살아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예술이 악용돼 정말 안타깝습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인터뷰를 마친 뒤, 기자에게 머리를 자르러 갈 거라고 이야기했다. “관객분들 만나러 가는데 예쁘게 단장해야죠”라 말하며 웃는 그를 보며 그가 강조한 순수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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