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국화의 계절이다.
조선의 22대왕 정조는 서울 창덕궁을 떠나 수원 화성을 거쳐 아버지 사도세자의 융릉까지 다녀오는 능 행차로 자신의 효심과 더불어 왕실의 권위를 과시했다. 정치적으로 문치주의를 강조해 왕권을 강화하려 한 정조는 스스로 시(詩)·서(書)·화(畵)에 두루 능했다. 정조 시대에 문인화는 물론 도화서 화원의 활동이 두드러져 조선의 화단이 융성했던 것은 문예부흥 정책을 넘어선 왕의 개인적 애호가 큰 동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정조 임금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이 국화도는 지난 1982년 보물 제744호로 지정됐다. 화면 왼쪽에 치우치게 그린 바위와 풀 위에 들국화 세 송이가 피어올랐는데 생김도 방향도 제각각이다. 다양성을 존중했던 정조의 취향이 반영된 것일까. 돌과 꽃잎은 좀 옅은 먹으로, 국화잎은 짙은 먹으로 표현하는 식으로 강약을 조절해 생동감이 느껴지게 했다. 특히 국화꽃 위에 살포시 앉은 메뚜기가 그림의 정취를 더해준다. 이 그림은 바위 옆에 서 있는 한 그루의 파초를 그린 보물 제743호 파초도와 짝을 이룬 병풍 그림이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그림 윗부분에 정조의 호인 ‘홍재’가 찍혀 있다.
이들 국화도와 파초도는 동국대박물관에 나란히 소장돼 있다. 꾸밈이나 과장 없이 특정한 형식과 화풍에 얽매이지 않는 그림들로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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