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원 한앤컴퍼니 대표의 첫인상은 올리버 스톤 감독의 명작 중 하나로 꼽히는 영화 ‘월스트리트’의 마이클 더글러스(고든 게코 역)를 떠올리게 한다. 고급 정장 슈트와 와인색 계열의 넥타이로 무장하고 흐트러짐 없는 대화는 냉정한 월가 승부사의 모습이다. 오해는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한 대표가 고든 게코처럼 탐욕에 빠진 냉혈한은 아니다.
한앤컴퍼니는 국내 1.5세대 토종사모펀드(PE)이다. 국내에 처음 PE가 설립되기 시작하고 5년이 지난 2010년 한 대표가 소니코리아 대표를 지낸 윤여을 회장과 손을 잡고 전략적 투자자(SI)와 재무적 투자자(FI)의 특성을 접목한 사업 모델로 한앤컴퍼니를 만들었다. 초기 국내 PE들이 SI에 치중하던 것과 다른 선택을 했다. 2013년 이후 생겨난 2세대 PE들이 한앤컴퍼니 모델을 주로 적용하는 것을 보면 정확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한앤컴퍼니의 성장은 한 대표의 활약과 궤를 같이한다. 그는 미국 예일대 경제학과, 하버드 비즈니스스쿨(MBA)을 나와 모건스탠리에서 IB를 시작했다. 모건스탠리 PE 아시아총괄 최고투자책임자(CIO) 등 PEF 운용사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불혹인 마흔 살을 한 해 남기고 한앤컴퍼니를 설립했다. 한 대표는 조선호텔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한동수씨의 아들이자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사위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이보다는 명확하고 빠른 판단으로 PE 업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한앤컴퍼니는 한발 늦게 PE 업계에 이름을 올렸지만 대한시멘트·웅진식품·한라비스테온공조 등 굵직한 딜을 연이어 성사시키며 순식간에 톱 티어(Top tier)로 올라섰다. 2011년 7월 8,000억원 규모의 1호 펀드를 조성한 뒤 1년6개월 만에 5건의 경영권 인수와 1건의 지분 투자를 할 정도로 빠르고 폭넓은 투자를 진행했다. 설립한 지 7년 만에 운용 중인 자산은 4조원까지 늘었다.
한 대표는 모건스탠리에서 쌓은 노하우를 살려 전통 ‘굴뚝산업’에 집중했다. 특히 모건스탠리 PE 시절 중국 시멘트 사업에 투자해 큰 성공을 거둔 경험을 활용했다. 중국 시멘트 업계가 구조조정에 나서기 전 산둥성 소재 시멘트 업체인 산수이(Shanshui) 시멘트에 투자했던 모건스탠리 PE는 업계가 재편된 후 회사를 되팔아 원금 대비 4배의 수익을 거뒀다. 한 대표의 경험을 디딤돌로 한앤컴퍼니는 2012년 시멘트 업체와 사업장 등을 인수했다. 국내 시멘트 시장은 소수의 생산자에 의해 움직이는 과점 시장이라는 점을 투자의 포인트로 잡았다. 한앤컴퍼니는 인수한 시멘트 회사를 기반으로 시멘트 업계 자체를 재편했다. 특히 슬래그시멘트 업체 인수에 공을 들였다. 슬래그시멘트는 원가가 싸고 선진국에 비해 점유율이 낮아 성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앤컴퍼니는 대한시멘트와 유진기업의 광양 슬래그시멘트 공장 등 약 500만톤의 슬래그시멘트 생산능력을 보유, 국내 최대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한앤컴퍼니는 여타 PE와 달리 투자를 집행하는 인력보다 관리하는 인력이 두 배나 더 많다. 관리팀에 속한 인력들은 투자를 집행한 회사에 파견돼 전문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 회사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린다. 한앤컴퍼니의 1호 투자기업인 휴대폰 카메라 모듈 업체 코웰이홀딩스는 2011년 한앤컴퍼니에 인수된 뒤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3배가량 늘어나며 세계 3대 카메라 모듈 업체로 성장했다. 동일한 산업 내에서 기업과 사업부를 잇따라 인수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인수합병(M&A) 전략도 한앤컴퍼니가 인수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방식이다. 대한시멘트와 한남시멘트는 순이익이 세 배 이상 늘었고 대우그룹 해체로 명맥을 유지해오던 지방 중소 자동차 부품 업체 코아비스도 한앤컴퍼니를 만나면서 새로운 납품 계약처로 폭스바겐의 낙점을 받는 등 기업가치가 꾸준히 오르고 있다.
투자전략에서 한앤컴퍼니의 가장 큰 특징은 경기 사이클을 타는 업종임에도 투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규제가 많은 산업은 피한다. 한앤컴퍼니는 창업한 지 갓 2년이 넘었을 때 세계 2위 자동차 부품 회사 한라비스테온공조(현 한온시스템(018880))를 4조원이 넘는 금액으로 인수했다. 자동차부품 시장의 성장성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국내 1위 타이어 제조업체인 한국타이어(161390)와 세계 3위 연기금인 국민연금과 손을 잡았다. 한앤컴퍼니는 한온시스템을 인수한 뒤 매출처를 다변화했다. 아시아 지역의 비중을 낮추고 미주 및 유럽의 비중을 늘렸다. 지난해 한온시스템의 매출액은 5조7,000억원, 영업이익은 4,225억원을 기록해 창사 이후 처음으로 호실적을 기록했다.
한앤컴퍼니는 펀드 조성 시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에게도 러브콜을 받는다. 다른 PE하우스들이 쉽게 시도할 수 없는 배당정책 때문이다. 한앤컴퍼니는 분기 배당정책을 실시한다. 회사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대신 분기마다 배당을 꾸준히 하는 외국 기업들의 사례를 벤치마킹했다. PE 하우스들이 앞장서 배당을 많이 받음에 따라 주주친화정책을 펼쳐야 PE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사라질 것이라는 이유도 있다.
설립한 지 7년째 되는 한앤컴퍼니는 포트폴리오 조정을 통해 한 단계 도약을 꾀하고 있다. 핵심인 쌍용양회를 중심으로 시멘트 사업을 정리하고 소규모 투자 회수를 단행하는 중이다. 나스미디어·쌍용에너텍 등 비핵심자산을 매각하는 동시에 STX엔진·STX중공업·SK엔카 등 새로운 투자 매물도 꾸준히 찾고 있다. 한앤컴퍼니 관계자는 “우리의 노하우를 살려 강점이 있는 회사를 인수,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이 투자전략의 전부”라고 강조했다. /박시진기자 see120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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