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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타는만남 A to Z]바다에서 제2의 인생을 항해하는 '21세기 이순신' 이야기





드넓은 태평양 위 작은 배에 남겨진 벵갈 호랑이와 소년의 모험을 그린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2012)’, 그리고 파도가 몰아치는 인도양에서 요트를 탄 노인의 사투를 담은 ‘올 이즈 로스트(All is lost,2013)’.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바다가 무대라는 점, 조난에 대처하는 인간의 생존력을 섬뜩하면서도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흔히 바다 하면 ‘깊은 수심, 파도, 상어, 조난’ 등 두려움의 대상이라고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무려 200여일동안 지구 위 모든 망망대해를 누비며 국내 최초로 단독·무기항·무원조 요트 세계 일주에 성공해 ‘바다 위 영웅’이라 불리는 한 남자가 있다. 남들은 40대면 노후준비에 서두르지만 그는 되레 못 다한 꿈을 이루기 위해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 치우고 전 재산을 과감히 바다에 올인했다. 20대뿐만 아니라 50대 중년들에게도 일명 ‘요트 위의 로빈슨 크루소’ 혹은 ‘21세기 이순신’이라 불리며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그는 대체 왜 ‘바다’에 빠지게 된 걸까. 평생 바다 위에서 ‘희망을 항해하고 싶다’는 그를 만나고 왔다.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서울 마리나 요트 클럽에서 만난 김승진(55) 선장


안녕하세요. 저는 요트로 지구를 여행하는 국내 1호 해양 모험가 김승진(55)입니다. 해양 모험가라는 말을 처음 들어보셨을 거예요. 쉽게 말해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는 산악 모험가들과 똑같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 약 100명의 해양모험가가 있죠.



어릴 적 아버지께서 교육자여서 전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자주 이사를 했어요. 보통 또래들은 정든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니까 이사를 싫어하는데 저는 늘 미지의 세계로 여행하는 기분이었어요. 아마 그때부터 모험을 즐겼던 것 같아요. 그 후 시간이 흘러 40대가 돼서 뉴질랜드에 가족과 여행을 갔는데 우연히 마리나에 빼곡하게 정박돼 있는 요트를 발견하게 됐어요. 그 순간 문득 어릴 적 전국 방방곡곡 이사 다니면서 설레던 기분이 피어오른 거에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모험가’를 꿈꾸며 망망대해를 떠돌기 시작한 거죠. (웃음)



2001년 일본에서 방송을 제작할 당시 우연히 들른 작은 서점에서 1998년 단독·무기항 요트 세계 일주에 성공한 일본인 시라이시 코지로씨의 ‘7개의 바다를 건너서’ 라는 자서전을 보게 됐어요. 그 자리에서 두툼한 책 한 권을 후루룩 읽고 ‘아, 이거 해봐야겠다!’ 하며 무릎을 탁 쳤죠. 그런데 그때만 해도 저는 요트의 요자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잠자는 시간을 쪼개면서 무려 14년 동안 바다를 배우고 요트를 배우면서 준비를 했습니다. 드디어 2014년 세계 요트항해에 도전해 성공을 거머쥐었고 ‘선장’이라는 수식어를 얻게 됐어요.



중학교 시절 어느 날 아버지가 저에게 “남들처럼 그냥 인문계 선택해서 명문대 진학하고 안정적인 직장 생활하면서 평범하게 살아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아버지처럼 안정적으로 살고 싶지 않았어요. 실제로 고등학교 3학년 때 진로를 정하면서 “다람쥐 쳇바퀴처럼 지루한 직업 말고 떠돌아다니는 직업은 뭘까?” 고민했었죠. 당시 미술에 좀 소질이 있었던 터라 자유로운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미대에 진학해 순수미술을 전공했죠.

그런데 막상 졸업이 다가오자 현실이 확 와 닿는 거에요.무엇을 하고 먹고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에 일본의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어요. 매일 새로운 세상 모습을 담는 ‘다큐멘터리 PD야말로 내 직업이다!’싶었죠. 그리고 곧장 일본으로 건너가 방송을 배우며 후지TV계열 프로덕션에 들어가게 됐어요.



1995년부터 독립 다큐멘터리 PD로 일하면서 KBS ’도전지구탐험대‘, ’환경스페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제작했어요. 중국 양쯔강 탐사 다큐, 장수 풍뎅이 다큐 등 자연 다큐멘터리를 찍기도 했고요. 1998년부터 7년간 중국 두만강 국경지대서 머물면서 목숨 걸고 북한의 꽃제비를 취재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죠. 다큐멘터리는 각본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르다 보니 매 순간이 모험과 도전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서는 조종면허를 취득해야 하고요. 가볍게 취미 생활로 즐기고 싶다면 전국 각지 해안가에 있는 마리나에 찾아가서 요트 승선 체험할 수 있어요. 특히 요즘에는 온라인상에서 요트 클럽 커뮤니티를 통해 여러 사람이 모여 아주 적은 비용으로 함께 요트 항해를 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저의 강점이자 노하우를 꼽자면 ‘선입견을 갖지 않는 것’이에요. 흔히 나이가 들수록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이 강해진다고 하는데 다행히도 저는 새로운 대상에 대해 항상 열려있는 편이에요. 호기심이 굉장히 많은 편이죠. 어릴 때도 새 학기에 교과서 받을 때 가장 신났어요. 사회과부도책을 펼쳐놓으면 온갖 물음표들이 쏟아지곤 했죠. ‘대체 여긴 지금 어떤 일이 펼쳐지고 있을까? 어떤 사람이 살고 있지?’ 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어요. 그 덕분에 커서도 캠핑, 스킨스쿠버, 여행 등을 즐기게 됐던 것 같아요.



어릴 적에는 부모님 덕분에 돈 걱정없이 자랐어요. 일본 후지 TV 계열 프로덕션에 취직해서도 연봉을 후하게 받았고요. 2000년대 초 뉴질랜드에 집과 농장을 사서 말과 양 등을 기를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가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때문에 한순간에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졌죠. 한국에 돌아와 공장에 다니면서 생계를 꾸릴 정도였어요. 마지막 남은 농장도 헐값에 매각되면서 전 재산이 3억원 정도 남았어요.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떼어 주고 남은 돈을 가지고 뭘 할지 한참 고민했죠. 결국엔 과감하게 제 꿈에 투자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꿈에 그리던 ‘요트’를 사서 즐기기로 한거죠.



사람들은 늘 ‘안정적인 직업과 연봉’에 집착해요. 하지만 저는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작품을 해야만 비로소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었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요즘 세상에 안정적인 직업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평생 다닐 수 있는 회사가 있을까요? 제가 생각할 때 100세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직업은 인생과 동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항해가 없을 때는 늘 강연을 다니고 있어요. 한 달에 15~20번 정도 하죠. 사실 저는 특별한 재능이 있거나 말재주가 좋은 유명인이 아닌데도 제 항해 이야기를 들려주면 신기하게도 다들 금세 빠져들더라고요. 무엇보다 제가 겪었던 경험을 지인에게 말하듯 편안하게 터놓고 얘기하다 보니까 더 진실되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요즘엔 가끔 젊은 친구들이 선물도 보내줄 정도예요. 이 정도면 중년의 아이콘이라고 불릴 만 한가요?(웃음)



흔히 요트를 귀족 스포츠라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정말 다루기 불편하고 힘들고 까다로운 종목이에요. 항해를 하면 물과 식량을 극도로 아끼면서 늘 흔들리는 선상에서 생활해야 합니다. 초호화 혹은 럭셔리하고는 거리가 멀고요. 반면 오롯이 자연을 즐길 수 있다는 매력이 있어요. 요트가 바람과 파도 너울에만 의지해서 천천히 움직이기 때문에 마음이 여유로워지고요.

드넓은 바다 위 작은 요트 안에 있으면 매 순간 대자연 앞에서 겸손함을 느껴요. ‘좁은 육지 안에서 그동안 왜 아등바등 살고 있었나’하는 부끄러움도 들고 비로소 평온함을 찾게 되는 거죠. 그 속에서 바다의 갈매기, 물고기들에게 이름도 붙여주고 소통하면서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 이정도면 굉장한 메리트 아닐까요?



바다는 지구의 70%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정작 우리는 육지에 살고 있으니까 지구의 진짜 모습을 잊고 사는 것 같아요. 물로 둘러싸인 별인데 말이죠. 바다는 제 인생에서 꿈과 도전을 실현하게 해준 무대와도 같아요. 대학생 시절에는 바다가 너무 좋아 스킨스쿠버 동아리를 만들기도 했고 전국대학연합잠수회 회장을 맡으면서 많은 청춘들과 바다에서 열정을 불태운 적도 있죠. 요즘은 오히려 흔들리는 바다 위 요트가 아닌 육지의 집에서 누워있으면 불면증이 올 정도랍니다. (웃음)



지난 2014년 10월 19일 충남 당진 왜목항에서 무동력 요트 아라파니호(13m)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할 당시 생활 모습. 배 위에서 직접 싹을 틔운 야채와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반찬삼아 식사했다. 또한 209일짜리 항해 달력을 만들어 식량, 식수, 장비 등을 꼼꼼하게 체크했다. /사진=김승진 제공


지금까지 총 10만 마일정도(약 18만km)의 거리를 항해했어요. 세계 일주는 4번 정도 했고요. 2010년에 크로아티아에서 요트를 구매해 혼자서 한국까지 배를 몰고 온 것이 첫 항해였죠. 장장 10개월간 2만여km를 항해하면서 자신감을 얻었어요. 2013년에는 카리브해에서 태평양 거쳐서 대한민국으로 왔고요. 2014년엔 국내 최초로 단독·무기항(항구에 정박하지 않는 것)·무원조(어떤 도움도 받지 않는 것) 요트 세계 일주에 성공했어요.

1년에 걸쳐 개조한 ‘아라파니호’를 타고 적도를 지나 피지, 칠레 케이프혼,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 인도네시아 순다 해협을 거쳐 209일 만인 2015년 5월 16일, 출발 지점이었던 왜목항으로 돌아온 거죠. 항해 거리가 4만 1,900km였어요.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여섯 번째였고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었죠. 2016년에는 ‘희망 항해 프로젝트’도 성공적으로 진행했답니다.



혼자 망망대해를 배회할 때 가장 무서웠던 것은 ‘빙하와 해적’이었어요.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처럼 바다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빙하가 많아요. 살짝만 스쳐도 요트가 부서질 수 있기 때문에 침몰의 위험이 있죠. 특히 일주를 시작한 지 174일째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과 자바섬 사이 순다 해협을 들어섰을 땐 해적을 마주칠까 봐 너무 두려웠어요.

그 일대에서 해적들이 자주 출몰하거든요. 해적들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는 위협보다는 사실 누군가 내 배 위에 올라타면 ‘단독’이라는 기록을 세울 수 없게 돼버린다는 것이 걱정됐죠. 그래서 배 한쪽 벽을 뜯어내 촬영 도구, 식량 등을 숨겼어요. 바다 위에서 사람을 만나면 반가울 것 같은데 두려움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니 순간 씁쓸해지더라고요.



우선 배에 어느 누구도 함께 탑승하면 안돼요. 심지어 반려동물도요. 항해과정에서 항구에 정박해서도 안 되고 닻을 내리는 것도 금지죠. 또한 항해 경로는 한쪽 방향으로 통과해야 하고, 적도를 2회 이상 통과해야 됩니다. 총 항해 거리가 4만km 이상이어야 해요. 즉 지구 한 바퀴를 돌아야 한다는 거죠. 물론 다른 배의 도움을 받는 것은 안 되고요. 단 통신 장비를 통해 기상 정보나 생사 확인 연락 정도는 주고받을 수 있어요.



사업적으로는 레저 시설 등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에 가장 관심이 많아요. 이러한 시스템을 잘 활용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바다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니까요. 그렇게 요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언젠가는 프로팀을 창단을 해서 세계적인 레이스에 출전을 시키는 것도 꿈꾸고 있고요. 개인적인 바람은 세계 요트 일주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겁니다. 그 힘든 과정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제 모습을 볼 때가 살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하고 즐기면서 사는 것이 행복 아닌가요?” 환갑을 바라보는 있음에도 ‘모험, 도전’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금세 장난기 많은 소년처럼 환하게 웃는 김선장.


육지에 있는 동안에는 늘 행사 다니느라 바빠서 제 사생활이 없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저만의 유일한 시간은 항해를 할 때죠. 바다 위에서 육지에서 못한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해요.

요즘에는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서 조금 부끄러워요. 심지어 동년배인 분께서 저에게 ‘중년의 로망’이라고 부르시더라고요. 저처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즐기면서 꿈을 펼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 역시 앞으로 더 열심히 바다 위를 모험하면서 사람들에게 행복과 희망을 항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정가람기자·류승연인턴기자 gara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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