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유통기업 입사 2년차인 김기수(30·가명)씨는 요즘 우울하다. 취업난을 극복하고 다행히 취직했지만 최근 실망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업무와 상명하달식 조직문화는 전략기획 전문가가 되겠다는 그의 희망을 가리고 있다. 그렇다고 어렵게 취직한 회사를 대책 없이 그만두기도 힘들어 갈등만 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전국 312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7년 신입사원 채용실태 조사’에서 대졸 신입사원 취업 경쟁률은 평균 35.7대1로 지난 2015년의 32.3대1보다 10.5%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3년의 경쟁률은 28.6대1이었다. 반면 2016년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은 27.7%로 2014년의 25.2%에 비해 2.5%포인트 증가했다. 2012년은 23.6%이었다. 취업난이 심해지지만 거꾸로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도 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일자리 문제에 국가적으로 떠들썩하지만 간과된 것이 있다. 바로 최근 증가하고 있는 ‘퇴사’ 풍조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업조직과 고용구조가 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과거 부모세대에 직장은 생계를 위해 묵묵히 참고 일하는 곳이었다. 그때의 ‘퇴직’은 생계수단을 빼앗기는 일인 만큼 부정적인 것이었다. 노동법상 공식 명칭은 ‘퇴직’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있다. 이제는 자발적인, 적어도 외부로부터 강요되지는 않은 ‘퇴사’가 크게 늘었다. 특히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는 20~30대 사이에서는 유행 수준이다. 회사 비전이 막연해서 혹은 열악한 근무환경이나 상사·동료와의 갈등 때문 등 이유도 여러 가지다.
조기 퇴사는 일단 경제적으로 적자다. 업계 관계자는 “대졸 신입사원이 6년 이상은 근무해야 회사 입장에서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총의 2013년 조사에 따르면 대졸 공채로 신입직원을 뽑고 교육하는 데 평균 6,000만원이 든다. 또 기업 이미지 실추, 기존 직원의 사기저하 등의 측면도 있다. 퇴사자 개인적으로도 취업에 드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퇴사 후의 재취업이나 창업 때까지의 곤란을 생각하면 선택을 잘못한 비용은 크다.
그럼에도 퇴사가 이어지는 것은 조직과 개인이 추구하는 불일치가 점점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인 등 취업 관련 기관들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담당자들은 ‘인내심 부족’이나 ‘직업의식 부족’ 등 직원 내적인 면을 꼽곤 한다. 반면 개인들은 심한 업무 강도나 보수적인 회사 내 분위기 등 구조적인 문제를 이유로 든다. 신세대인 사원들은 임금 외에 삶의 질도 추구하는 ‘워라밸’을 요구하지만 기업들의 조직문화는 고도성장기 방식의 근면·성실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우리의 기업 조직문화가 전환기에 있다고 해석한다. 퇴사에 대한 사회적인 손익계산이 필요한 이유다. 퇴사 풍조의 만연은 기업과 개인 모두에 새로운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퇴사를 나쁜 측면에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퇴사라는 ‘이벤트’를 계기로 모호했던 정체성을 확인하고 기존 기업과 조직에서 익힌 능력이 창업이나 재취업에 활용되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적 벤처기업을 키운 최고경영자(CEO)들은 대부분 ‘퇴사의 추억’을 가지고 있다. 기업들도 신세대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적극 채용하고 조직문화를 혁신하고 있다. /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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