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동시간 단축 위한 행정해석 폐기 추진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초과근무 기업 처벌·소송사태 우려는 과장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정부의 행정해석 폐기 방안을 놓고 찬반양론이 대립하고 있다.

주당 최장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 합의가 진통을 겪자 정부는 행정해석을 바꿔 근로시간 단축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재계는 행정해석을 폐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경우 생길 큰 혼란을 우려하고 있다. 행정해석을 폐기하면 근로시간 단축 효과는 곧바로 발생한다. 주 52시간을 넘겨 일을 시키는 사업장 대표는 모두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 행정해석 폐기 찬성 측은 초과근로 기업에 대한 처벌, 임금 소송 등에 대한 우려는 과장된 면이 많고 행정부의 폐기 방침이 오히려 법 개정을 앞당기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근로시간 단축이 급격히 시행될 경우 중소기업의 심각한 인력난, 경쟁력 저하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는 만큼 행정해석을 폐기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이번 정기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문재인 대통령이 행정해석을 통해서라도 바로잡겠다고 선언했다. 야당 일부에서는 ‘이것이 박근혜 정부가 양대 지침을 강행한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비판하는 것 같은데 이 둘은 완전히 다르다. 양대 지침은 현행 근로기준법을 완전히 무시하고 노동자에게 불이익한 내용을 정부에서 행정적으로 강요하려고 했던 것이고 노동시간과 관련한 행정해석 폐기는 바로 그 남용된 행정해석으로 훼손된 법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이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1주간의 근로시간은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단 1주 12시간을 한도로 52시간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그런데 왜 이 52시간이 68시간이 된 것일까. 이는 정부가 1주를 5일로만 계산하고 토·일 휴일 2일간 또다시 각 8시간씩 더 일할 수 있다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에도 국회가 해야 할 일을 못 한다면 법 본래의 원칙을 행정부가 지키겠다는 것이다.

재계가 낮은 생산성을 들어 이에 반대하고 있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생산성이 낮아 노동시간을 줄이기 어렵다니, 오히려 제대로 충분히 인력을 고용하지 않고 낮은 임금의 장시간 노동에 기대 생산성 향상을 이루지 못한 미숙한 경영 탓이 아닌지 점검해주면 좋겠다. 평소에는 하청 단가 후려치기 등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중소 영세기업이 노동시간 단축으로 겪을지도 모르는 어려움을 재계가 이렇게 세심하게 살피고 있었다니 그 역시 생소하지만 반가운 일이다. 원하청 공정거래 원칙 확립으로 중소 영세기업의 지불 능력을 상승시켜주는 방법도 있으니 고려해주기를 바란다.

현 행정해석이 폐기되면 주 52시간 초과근로 기업이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는 우려도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 위반 기업에 대한 실제 처벌 발생 빈도나 그 미약한 수준을 고려한다면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 임금에 대한 청구소송 사태가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 대한 우려도 마찬가지다. 할증수당을 소급받고자 기업을 도산으로 몰고 가는 노동자가 얼마나 될 것인가. 단체교섭 혹은 노사협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연착륙할 방안을 마련하는 길도 있다.

따라서 지금은 행정해석 폐기 여부가 아니라 설사 이 행정해석이 폐기된다 하더라도 그 혜택을 보지 못하는 상당수의 노동시간을 어떻게 지켜줄 것인가에 관심을 가질 때다. 서비스업의 많은 일자리가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연장근로 수당 없이 장시간 노동하는 정규직, 일하는 시간을 업무량에 따라 수시로 유연하게 바꿔도 어쩔 수 없이 일할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지나치게 가족 같은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당 없이 연장근로에 동원되는 영세기업 혹은 소규모 조직의 노동자, 무엇보다 노동자성을 제대로 인정받기 어려워 근로기준법의 적용 자체에서 배제되는 수많은 특수고용 노동자들과 종속된 개인사업자 등.





서구 선진국의 경우 노동시간은 대부분 단체교섭으로 결정된다. 단체협약으로 관행화된 제도를 법이 뒤따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와 같이 법에 대한 근로감독이 느슨하며 단체협약 적용률이 10% 남짓에 불과하다면 행정부라도 나서 법과 단체교섭의 사각지대를 밝혀줄 필요가 있다. 노동시간에 대한 행정해석 폐기는 시작일 뿐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시정, 불법 파견에 대한 단속,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실제로는 노동자이면서 개인사업자로 오분류된 사례에 대한 시정 등 노동시간 단축이 더 많은 노동자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더욱더 대통령의 결정을 환영한다. 국회 통과가 이뤄지지 못할 경우에 대비한 국회 압박용이 아니라 진정한 의지 표명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행정해석 폐기뿐 아니라 지난 정부들이 돌보지 않은 많은 노동 관련 현안을 요원한 법 개정에 미루지 않고 현재 존재하는 법의 범위에서라도 적극적으로 행정적 개선 방안을 찾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출로 이해하고 찬성한다.

행정부의 타성으로 대통령의 좋은 뜻이 무력화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식상한 경제 논리에 더 이상 휘둘리는 정부가 아니기를 바란다. 이 희망이야말로 식상한 착각이 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