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국빈 방한 및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동맹 강화라는 숙제를 무사히 마치고 아시아 3개국 순방길에 올랐다. 하지만 이번 순방 일정에는 또 다른 ‘빅 이벤트’인 한중 정상회담이 기다리고 있어 다시 한 번 외교·안보 현안 해결 능력을 검증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 정부 출범 이후 줄곧 강조해온 4강 외교 편중 해소 및 새로운 국제협력 파트너 확보를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10일부터 오는 12일까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베트남에 머무르는 동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단독 정상회담을 갖는다. 해당 회담에서는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놓고 쌓였던 양국 간 앙금을 뒤로 하고 두 나라 정상이 한반도 평화 정착과 교류 확대를 위한 발전적 관계를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마침 다음 방문지인 필리핀에서는 중국이 주도해온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정상회의에 문 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어서 앞서 한중 정상회담에서 이와 관련한 큰 틀의 정책 추진 공감대가 마련될지도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또 문 대통령은 이번 순방을 통해 미국·중국에 버금갈 제3의 해외 신시장 발굴 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은 이번 일정을 통해 미국과 중국에 편중된 한국의 교역 구조를 한층 다변화할 예정이다. 아울러 당면한 외교·안보 현안을 풀어나가기 위해 보다 결속력 있는 국제협력을 이끌어내는 계기를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문 대통령이 9일 인도네시아에서 참석하는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포럼 행사는 한국의 방위산업계와 건설·정보통신기술(ICT)·유통 분야의 중견·중소기업들이 현지에서 신사업을 개척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게 관련 업계의 전망이다. 현장에서 양국 정부와 민간기업이 주도해 교역과 투자협력을 증진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잇따라 체결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주로 방위산업과 발전·전자상거래 분야가 초점이 될 것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방위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인도네시아는 국산 차세대전투기인 ‘보라매(KF-X)’ 사업에 공동참여해 사업비의 20%를 부담하는 사업 파트너이자 완성 기체 중 상당 수량을 구매할 중요 고객”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육상·해양 등으로 방산교역의 범위를 늘려나갈 잠재력이 큰 시장”이라고 전했다. 방위산업은 대부분의 제조공정을 정밀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만큼 아시아로의 수출이 활성화되면 그만큼 국내에 큰 일자리 낙수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전자상거래 분야에서도 교역이 활성화되면 인도네시아 직구족들의 수요를 끌어오는 특수를 누릴 수 있다. 대형 유통 업체의 한 임원은 “중국의 경우 알리바바가 동남아시아에 적극 진출해 자국 기업의 동남아 내수시장 진출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며 “우리도 이 같은 전략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포럼 행사에서는 문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통해 이른바 ‘신남방정책’의 청사진을 내놓을 계획이다. 해당 정책은 동남아시아 등을 중국·일본·러시아 등 동북아 강국 못지않은 외교·통상의 파트너로 격상시키기 위한 구상을 담을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에서 문 대통령이 조코 위도도 대통령과 가질 한·인도네시아 정상회담은 이 같은 통상발전 밑그림을 그리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 대통령은 첫 순방지인 인도네시아 방문 첫날인 8일 자카르타의 한 호텔에서 현지 동포들과 만찬간담회를 열고 “마침 인도네시아로 오는데 좋은 일이 있었다”며 전날 한국 원양어선이 남태평양에서 선박화재를 당해 스티로폼 뗏목을 타고 표류하던 선원 11명을 구조했는데 그 가운데 10명이 인도네시아 선원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렇게 조코위 대통령과 정상회담도 아주 잘될 것 같다”고 전해 갈채를 받았다. 아울러 “인도네시아는 아세안(ASEAN)의 핵심 국가”라며 “양국 간 경제협력을 더욱 강화해 우리 기업의 진출과 사업 확대를 뒷받침하겠다”고 다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런 차원에서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아세안과의 교류·협력관계를 4대국 수준으로 격상시키고 발전시켜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주변 4대국을 넘어 우리의 시야를 넓혀야 대륙과 해양을 잇는 교량국가로 지정학적 이점을 살려나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문 대통령의 설명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외교 지평을 확대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문 대통령은 베트남 방문 기간에 APEC 정상회의 일정 등을 소화한 뒤 필리핀으로 자리를 옮겨 12일부터 15일까지의 순방 일정을 마칠 예정이다. 필리핀에서는 ‘동남아국가연합+3(ASEAN+3) 및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등의 일정이 예정돼 있다. /자카르타=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