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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 이후에도 직접민주주의? 방향 틀렸다"

'정치학계 석학' 최장집 명예교수 '한국 민주화 30년' 기조발제

대의제 민주주의 중요성 역설

"靑 국민청원 통한 의사결정땐

이해집단간 갈등의 불씨 제공"





정치학계 석학인 최장집(사진) 고려대 명예교수가 촛불시위 후에도 직접민주주의보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최 교수는 8일 서울시와 6월민주항쟁30년사업추진위원회가 주최하고 노무현재단이 후원한 국제 학술대회 ‘한국의 민주화 30년-세계 보편적 의미와 전망’의 둘째 날 기조발제를 맡아 이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을 지낸 최 교수는 이날 ‘한국의 민주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이라는 제목의 발제문에서 “촛불시위가 권위주의화하고 있던 대통령을 탄핵으로 퇴진시키고 대선으로 더 개혁적인 민주당 정부를 탄생시켰다”면서 “그것을 민주주의의 승리로 해석한다고 하더라도 촛불시위 후 민주주의가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을 더 키울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또 “대의제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정치를 의회·정당 중심의 제도 안으로 수렴하는 대신 광장에서 운동의 정치를 확대하는 직접민주주의 추구는 커다란 방향착오”라며 “직접민주주의가 대의제 민주주의보다 더 좋고 더 발전된 형태라는 전제는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대표성 없는 직접민주주의 방식이 갈등의 원천이 될 수 있다”며 “청와대가 국민청원으로 의사결정을 추진하면 극히 부정적 결과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그 근거로 청와대가 국민청원 제도를 만들자 ‘소년법을 폐지하고 소년 범죄자에게 중형을 내려라’ ‘여자도 군대를 보내라’ 등의 요구가 나온 사례를 들었다.

최 교수는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청원에서 어떤 이해집단은 과다대표되고 어떤 집단은 과소대표될 수밖에 없다”며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선거만큼 비용이 싼 참여 방식은 없다”고 강조했다.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이익집단에 가입해 회비를 내는 사람들, 법안 심의를 위해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 선거에서 투표하는 사람들 사이에 계층적·종교적·인종적 차이가 있다는 것이 학계 연구에서 확인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촛불시위가 역사적 사건임은 분명하지만 혁명도 아니고 큰 정치·사회적 격변을 불러온 것도 아니다”라면서 “다만 촛불시위는 한국 민주주의의 경로와 내용에 뚜렷한 변화를 가져올 전환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 교수는 촛불시위의 정치적 의미와 관련해 “대통령이 법 위에 군림하는 것이 더는 불가능하도록 헌법이 작용했다는 점”이라며 “탄핵에 이르는 헌법의 작동은 한 대통령에게 한한 것이 아니라 모든 대통령에게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7일부터 이틀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이번 학술대회에는 최 교수를 비롯해 정세균 국회의장, 이부영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 조제 하무스 오르타 전 동티모르 대통령 등이 참석해 한국 민주주의와 국제사회의 평화·인권 등을 주제로 발제와 토론을 벌였다.

/김정욱기자 myk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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