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강진 피해로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을 어루만지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1년여 전 9·12 경주 대지진 때도 정치권은 그랬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여야는 경주 대지진 이후 지진대응 관련 법률 개정안 49건을 무더기로 발의해놓고도 39건의 법안을 국회에 묵혀두고 있다. 계류 법안에는 교육시설·일반건축물의 내진설계 보강과 지진 관측장비 업그레이드, 활성단층 연구조사 강화 등의 대책이 포함돼 있다. 경주 대지진 이후 14개월 동안 정치권이 보여준 무관심을 본다면 이번에도 번드르르한 말만 앞세우고 생색내기에만 그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정치권의 민생 행보가 이번에도 전시성 이벤트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지진대응을 포함한 재난방지 체계와 관련 제도를 법률적으로 뒷받침하고 예산도 여건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당장 시급한 것은 내진성능의 보강이다. 수능을 일주일 뒤로 연기한 연유도 포항 지역 수능 고사장 14곳 가운데 10곳에서 벽돌이 무너지고 금이 간 탓에 고사장 안전을 장담하지 못해서다. 전국 일선 학교 가운데 내진성능이 확보된 비율인 내진율은 23.1%에 불과하다. 학교시설은 공공시설물 중에서도 가장 내진율이 떨어진다.
국민안전을 지키는 데 여야가 따로 없다. 당장 이번 예산심사 때부터 공공건물의 내진성능 보강에 예산을 더 늘리기 바란다. 예산상의 제약이 있다면 지진이 잦은 경북 지역에 우선 배분하는 것도 방법이다. 국회 서랍 속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지진대응 관련 법안도 각 상임위별로 논의의 테이블에 올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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