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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추모의 계절에…무덤서 통곡하는 창업주들

홍준석 산업부장

기업 적폐대상 모는 文 정부

기업들, 신규 사업 도전은커녕

'소나기 피하자'식 태도로 자조

위기 속에서 기회 찾고 도전해야





재계에 11월은 추모의 달이다. 지난 15일 담연(湛然) 최종건 SK그룹 창업주 44주기 추모식이 총수일가가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치러졌고 17일은 정석(靜石)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15주기 추모식이 진행된다.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30주기 기일은 19일인데 이틀 앞당겨 17일에 추모식이 열릴 예정이다. 우정(牛汀)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3주기는 8일 외부에 알리지 않고 가족끼리 조용히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동찬 명예회장은 기자가 외환위기 때 초년병 시절 코오롱그룹을 3년간 취재하면서 맺은 인연으로, 딱 3년 전 이 지면을 통해 ‘참 기업인, 고 이동찬 명예회장을 기리며’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는 터라 이들 1세대 기업인들에 대한 추모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당시 칼럼에 칠십 평생 참 기업인을 몸소 실천했던 이 명예회장의 ‘정도경영’이야말로 후대가 되새겨야 할 깊은 울림이라고 썼던 게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이 명예회장에 대한 추억이 남다른 까닭이었지만 기실 ‘참 기업인’ 하면 떠올리게 되는 기업인은 호암 이병철 창업주다. “국가와 기업의 장래는 사람에 의해 좌우된다”는 ‘인재제일(人材第一)’, “사업을 통해 나라에 기여하고 사회를 이롭게 하겠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도전정신과 창업정신의 신념으로 호암은 3만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한 정미소 삼성상회를 초일류기업 삼성으로 일궜다. ‘기업가 정신’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 ‘호암 정신’이 없었다면 전인미답의 반도체 신화도 글로벌 넘버원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마 지금의 경제 대국 대한민국의 모습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정석 조중훈 창업주도 기업가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해방 직후 트럭 한대로 한진상사를 창업해 “수송은 인체의 혈맥과도 같다”며 땅·바다·하늘길 개척에 평생을 바쳤다. 집무실에 걸려 있던 ‘수송보국’ 휘호처럼 정석은 57년간 ‘수송 외길’을 걸으며 한진을 세계적인 종합물류 그룹으로 이끌었고 국가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담연 최종건 창업주 역시 전쟁의 잿더미에서 맨손으로 SK그룹의 모태가 된 선경직물을 일으켰고 담연의 끝없는 도전의 기업가 정신은 어려울 때 더 강해지는 SK의 DNA에 깊숙이 각인돼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요새 재계를 보노라면 과거와는 너무나도 딴판이어서 안타깝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기업들은 계속되는 사정 한파에 “소나기만을 피하자”며 납작 엎드려 있고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강력한 규제와 반기업적 정책에 “사업하기 힘들어 죽겠다”며 아우성이다. 경찰이 자택공사 비리 혐의로 구속영장을 두 번이나 신청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경우나 “기업들 혼내고 오느라 늦었다”며 웃는 공정위원장의 뒤틀린 기업관, 법인세·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을 줄줄이 꺼내 들며 기업을 옥죄는 정부의 모습에서 참 기업인과 기업가 정신을 운운하는 게 사치스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기업을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삼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정권을 향해 ‘재벌은 때려잡아야 한다’는 과거 운동권 사고방식의 틀에 갇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비단 기자뿐일까.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돌돌 마는 TV가 나오고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등장할 태세고 로봇 시대가 현실화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글로벌 기업들은 수십조·수백조원을 쏟아부으며 무서우리 만큼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우리 기업들은 결기 있게 신규 사업에 칼을 뽑아들기는커녕 당국의 눈에 띄지 않는 게 최선이라며 자조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우리 미래는 어떻게 될까.

기업을 적대시하며 과(過)만을 따져 묻는 정부나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지 못하고 도전을 거부하는 기업 모두 정상은 아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위태위태하다. 분명한 사실은 한강의 기적 뒤에는 ‘참 기업인’들의 피와 땀이 있었고 불굴의 ‘호암 정신’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추모식에서 창업주들이 무덤에서 통곡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jsh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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