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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미래를 이야기하자-규제혁파 나선 미국] '네거티브 규제'의 힘...4차산업 주도하고 전통산업도 부활

<2>범죄 아닌 모든 것을 허용한 미국

신약개발·공유숙박 사업 등 바이오·창업 생태계 크게 진전

소득증대·비용절감 효과에 우버 서비스 등 대부분 州서 가능

사기 논란에도 비트코인 규제 신중...금융규제법 폐지도 적극





미국 독립전쟁을 촉발한 티파티호(號)가 떠 있는 미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배스강을 지난 시포트 지구에서는 강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타워크레인들이 새 건물들을 올리느라 분주하다. 하버드·MIT·터프츠 등의 대학들이 밀집된 미국 최대 대학도시 중 하나인 보스턴에 화이자·노바티스·존슨앤존슨·사노피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연구센터는 물론이고 대규모 창업 시설을 앞다퉈 설립하면서 부족해진 임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건설 열기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가시화하고 있는 정부의 신약 및 의료기기 개발 관련 규제 혁파는 보스턴 지역의 바이오 창업 생태계를 크게 진전시키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이 최신 기술을 응용한 신약 및 희귀약 개발을 폭넓게 인정하고 심사 기간도 대폭 단축하자 대학 연구소 등은 축적한 기술을 적극적으로 상용화하고 있다. 지난 2016년 불과 22개의 신약을 승인하는 데 그쳤던 FDA는 지난해 전년의 두 배가 넘는 46개의 치료제를 새로 승인했다. 보스턴 지역혁신 랩의 베키 도너 국장은 “규제 완화에 세금 감면, 법인세 인하 등 다중 혜택이 보스턴의 인재들과 만나 지난해에만 신생 바이오 업체가 130개 이상 설립됐다”고 전했다.

민형사상 법과 규율을 제외하면 어떤 것이든 허용하는 ‘네거티브 시스템(Negative system)’을 근본으로 하는 미국의 규제 시스템은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 혁파 움직임과 맞물려 미국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이끄는 최강 엔진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을 쓰려는 순간부터 당국의 허용 여부를 가늠하고 수개월 동안 인가를 기다리기 일쑤인 한국의 ‘포지티브(Positive) 규제’와는 판 자체가 다르다. 정부 당국도 신상품이나 서비스를 함부로 규제할 수 없는 미국의 탈규제 시스템은 지금까지 없던 신기술을 개척하는 사업들이 태반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특히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동부보다도 기업 자유도가 한층 높은 캘리포니아·워싱턴주 등 미 서부는 애플·구글·아마존·페이스북의 성공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유니콘(대형 스타트업) 1·2위인 공유택시 우버와 숙박 공유업체 에어비앤비 등의 기업들을 배출하며 ‘규제 프리존’의 파워를 증명하고 있다. 네거티브 규제 덕분에 누구나 택시 영업을 하고 숙박업체 사장이 될 수 있는 우버와 에어비앤비 서비스는 기존 택시 및 숙박업계의 적지 않은 반발을 샀지만 혁신적 기술이 생산성 및 소득 증대, 비용 절감 등 1석 3조의 효과를 내자 이제는 거의 모든 주에서 제한 없이 허용되고 있다. 손수득 KOTRA 북미본부장은 “미국의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은 신기술에 계속 혁신을 더하기 쉽게 하고 스타트업들이 신규 사업을 업그레이드하며 경쟁하는 데 탁월한 생태계를 만든다”고 평했다.



미국은 주나 시 정부 등이 신산업 육성 등을 위해 자금 지원이나 토지 및 사무실을 제공할 때도 기업에 ‘그림자 규제’로 불리는 단서 조건을 걸지 않는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붐을 추월하기 위해 애쓰는 뉴욕시는 브루클린의 옛 해군 조선소 부지를 민간에 장기간 초저가에 제공하면서도 ‘사회와 지역 공동체에 기여하는 기술’ 정도를 입주 업체들에 요구할 뿐 다른 조건을 요구하지 않는다. 스타트업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데이비드 벨트 뉴랩 창업자는 “뉴욕시는 금싸라기 땅을 거의 무상으로 35년간 줬지만 사업 종류나 규모 등 어떤 것도 간섭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미국의 기업 환경은 에너지 등 전통 산업의 르네상스를 이끄는 데도 기폭제 역할을 한다. 2000년대 초반 하루 원유 생산량이 600만배럴에 못 미쳤던 미국은 셰일혁명 덕에 올해 하루 생산량이 970만배럴에 이를 것으로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예상하고 있다. 세계 최대 원유수입국이던 미국이 연간 1,000억달러 넘는 원유·가스 판매 수입을 늘리면서 더 이상 중동에 에너지 안보를 의존하지 않게 된 엄청난 변화는 셰일 개발이 집 한 채를 짓는 것보다 어렵지 않은 규제 환경 덕분이었다는 것이 공통된 평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강화됐던 금융 규제의 흐름도 깨지고 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월가 출신 인사들을 대거 백악관과 정부 요직에 기용하며 규제 철폐를 공언하면서 지난해 1~9월까지 JP모건·골드만삭스·웰스파고 등 미국 6대 투자은행의 투자 자산은 1,700억달러(약 185조원)나 늘어났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분석했다. 하루 20% 넘게 가격이 등락하는 가상화폐 비트코인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가격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도 사기라는 주장이 적지 않지만 미 금융 당국은 좀처럼 규제에 나서지 않고 있다. 비트코인 규제에 가장 가까이 있는 곳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지만 CFTC도 비트코인을 사고파는 거래 자체를 규제할 권한은 거의 없다는 것이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설명이다.

앤서니 챈 JP모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한 금융규제법(도드프랭크법) 폐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금융시장은 규제 완화를 이미 실감하고 있는 분위기”라며 “지난해 다우지수가 25% 넘게 상승한 것은 감세보다 규제 완화가 일찌감치 기업과 가계의 투자심리를 안정시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스턴·샌프란시스코·휴스턴=손철 특파원·정혜진 기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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