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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미래를 이야기하자] '경직된 정규직화'에 코너몰린 기업 … 결국은 일자리 축소

< 3 > 한국, 일방통행 親노동정책…근로자엔 '독 든 사과'

새해 첫날을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31일 한국GM 부평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근로자 65명은 1월1일부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한국GM 부평공장이 일부 사내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면서 해당 업체에 소속돼 있던 비정규직이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비정규직지회는 한국GM이 비정규직이 맡고 있는 일을 정규직에게 돌리는 ‘인소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GM의 명분은 경영 위기 등이다. 지난 2014년 자본잠식상태에 빠진 한국GM은 그해 1,192억원, 2015년 7,048억원, 2016년 5,3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3년간 약 1조4,000억원에 달하는 누적적자를 냈다.

경영난에 따른 사실상의 구조조정이 비정규직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엄밀히 말해 정규직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극도로 낮기 때문이다. 인건비를 줄여 경영 위기를 타개하려는 기업 입장에서는 막강한 힘을 가진 노동조합의 울타리 안에 있는 정규직보다 상대적으로 해고가 손쉬운 비정규직을 내칠 수밖에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노동 유연화 없는 비정규직 철폐

인건비 감당 어려워 해고 불보듯

되레 고용 안정성 저해요인으로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다수 비정규직은 ‘정규직 전환’을 외친다. 친(親)노동 성향의 문재인 정부가 대대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요구와 무관하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취임 직후 인천공항을 찾아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후 정부는 정규직 전환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정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민간 부문의 비정규직 사용도 ‘사용사유 제한’ 제도 도입을 통해 극도로 제한할 방침이다. 사용사유 제한은 계절적인 인력수요 발생, 육아·출산휴가 시 결원 보충 등 법령에 열거되는 몇몇 이유에 해당하지 않을 때는 원천적으로 비정규직을 쓸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지지 기반의 요구에 응답하는 것이나 정규직 전환으로 고용 안정성을 확보하고 일자리의 질적 수준을 높이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를 나쁘다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우리나라 정규직 노동시장이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3년 기준 한국의 정규직 고용보호법제지수는 2.37이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치인 2.04보다 0.33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고용보호법제지수는 값이 높을수록 해고 등이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0.26)·캐나다(0.92)·영국(1.10)·일본(1.37) 등과 비교하면 앞 자릿수부터가 다르다. 한국보다 지수가 높은 국가는 독일(2.68)·이탈리아(2.68)·프랑스(2.38) 등 몇 개 나라밖에 없다.

이처럼 경직된 노동시장을 유연화하지 않은 채 비정규직을 없애는 정책은 노동시장의 수요자인 기업을 코너로 몰 수 있다.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기업이 도산하게 되면 결국 노동시장의 공급자인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20여년 전 외환위기 때 많은 근로자가 실제로 겪어야 했던 일이다. 기업이 해외로 공장 등을 이전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정책이 오히려 고용 안정성 저해라는 기대 효과와는 정반대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규직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방안은 현재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현 정부는 그나마 지난 정권이 정규직 근로자를 중심으로 하는 노동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노동 유연성 제고와 임금피크제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 등 양대지침마저 폐기했다.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용사회와 노동현장이 활기를 띠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잘하는 사람은 격려해주고 못하는 사람은 교육을 받도록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퇴출시킬 수도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며 “현재처럼 능력이 있든 없든 한 시스템에 넣고 똑같이 월급 주고 하는 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와는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노동 생산성 담론도 사실상 실종

단순 근로시간 단축땐 경제 타격

4차 산업시대 걸맞게 재정비해야



경직된 노동시장과 함께 노동개혁의 대상이 돼야 할 낮은 노동생산성에 대한 담론도 사실상 실종된 상태다. 노동생산성 제고 이슈를 탐탁지 않아 하는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강성노조, 노동계를 자극하고 싶지 않은 정부 등의 입장이 맞물린 결과로 분석된다. 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16년 기준 미국(63.3달러)의 절반 수준(33.1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OECD 평균(47.1달러)에도 크게 못 미친다.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노동생산성 제고는 필수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특히 노동생산성을 개선하지 않은 채 단순히 근로시간만 줄이면 기업과 국가 경제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사실상 2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법규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재정비하는 것도 노동개혁을 통해 풀어내야 할 과제다. 이 교수는 “이제 막 창업해 6개월 갈지, 1년 이상 갈지도 모르는 벤처기업에 처음부터 정규직을 뽑으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벤처는 비정규직을 쓸 수 있도록 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게끔 해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공장’ 노동법으로 그런 유연성마저 허용하지 않는다면 벤처는 하지 말라는 얘기와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세종=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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