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 퀸, 비틀스, 라디오헤드 같은 전설적 뮤지션들의 대형 앨범 포스터가 곳곳에 걸려 있다. 꽁지머리에 콧수염까지 기른 청바지 차림 남성도 눈에 들어온다. 얼핏 봐서는 TV에서나 볼 법한 록커의 모습이다. 영락없는 록 밴드 연습실 같은 이곳은 삼성전자(005930)가 지난 2013년 말 미국 로스앤젤레스 외곽 발렌시아에 세운 오디오랩이다.
12일(현지시간) 찾은 삼성전자 오디오랩에는 직원 19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첨단 사운드 기술 연구개발(R&D)’ 산실치고는 소규모지만 직원들 면면과 들여놓은 장비를 보면 삼성전자가 어떻게 글로벌 사운드바 시장에서 지난해 점유율 23%(퓨처소스 기준)로 1위를 꿰찼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선 19명 중 4명이 관련 분야 박사 학위 소지자다. 석사급 연구원도 7명이나 된다. ‘가방 끈’만 긴 건 아니다. 스피커 외장 설계를 맡고 있는 연구원은 앨범을 4개나 낸 기타리스트다. 또 다른 연구원은 정기적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올드팝 공연을 하는 현직 뮤지션이다. 음향에 그 어떤 전문가보다 민감한 이들이다. 하만 출신인 앨런 드밴티어 삼성전자 오디오랩 상무는 “본사에서는 정보기술(IT) 중심인 실리콘밸리에 오디오랩을 세우자고 했지만 음악은 로스앤젤레스에서 해야 한다고 우리가 고집했다”면서 “우리는 공부벌레들이 아니라 음악과 영화를 즐기는 뮤지션”이라고 소개했다.
드밴티어 상무가 “세계 1등 음향 연구소라고 자신한다”며 자신 있게 공개한 곳은 바로 무반향실. 얼핏 봐서는 사방이 미로 모형으로 둘러싸인 것 같은 이곳은 외부 소리 유입을 100% 차단, 잡음 없는 완벽한 사운드를 측정할 수 있는 공간이다. 드밴티어 상무는 “TV와 스마트폰 업체는 물론 오디오 전문 업체에도 없는 장비”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오디오랩에 이처럼 공을 들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소비자들이 예전에 비해 소리에 민감해졌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TV에서 오디오 역량이 제품의 차별화 포인트로 자리 잡고 있다”면서 “한동안 TV는 화질과 사이즈 경쟁이 화두였지만 최근 고품격 영상 콘텐츠가 늘어나면서 섬세하고 웅장한 오디오가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폭적인 지원을 업은 삼성전자 오디오랩은 설립 4년여 만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올해 CES 2018에서는 두께를 기존 제품의 41% 수준으로 줄이면서 저음을 내는 우퍼 4개를 포함해 7개의 스피커 유닛을 내장한 슬림형 사운드바 신제품(NW700)을 선보였다. 삼성전자는 올해 35억1,000만달러 수준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운드바 시장에서 하만 인수 효과까지 더해 글로벌 오디오 시장 선두 자리를 굳히겠다는 각오다.
/로스앤젤레스=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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