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사진) 전 유엔 사무총장이 25일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관련해 “순수한 마음으로 온다고 믿고 싶지만 과거의 경험을 볼 때 그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한국프레스센터 프레스클럽에서 ‘평창올림픽과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라는 주제로 열린 한미클럽 오찬 세미나에 참석해 “과거 북한의 행태를 보면 늘 어려운 지경에 닥쳐 돌파구가 없는 상황에서 평화의 제스처를 해왔다”며 “전 세계가 동참하는 안보리 제재로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이를 모면하러 나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반 전 총장은 최근 남북 고위급 회담 재개 등 문재인 정부의 남북 관계 개선 노력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은 “평창 이후 남북 군사당국 회담과 진정한 의미의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인 협의가 이어져야 한다”며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또 문제가 생기고 북한이 오판하거나 오기로 또다시 도발할 경우 국제사회의 반응은 상상하고도 남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의 평창 참가 등과 관련해 미국에서 나오는 우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 전 총장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평창올림픽의 메시지를 북한이 가로채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며 “우리도 이런 점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포츠를 통한 세계 평화와 화합의 장이 돼야 할 평창동계올림픽이 북한의 선전전 무대로 전락하거나 북한이 올림픽 기간을 무력 도발 준비를 위한 시간 벌기, 한미 관계의 간극 벌리기 등의 계기로 악용할 수 있다는 미국의 우려에 동의를 표한 것이다.
또 반 전 총장은 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과 공동 입장 등에 대해서도 바람직하다고 평가하면서도 평창올림픽 기간 북한 선수단에 관심이 과도하게 집중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반 전 총장은 “(올림픽 기간 동안) 많은 정상이 한국에 오는데 모두 전 세계에 자국 선수들이 비치기를 바랄 것”이라며 “그런데 북한 선수만 비치면 어떨지 우리가 좀 잘 생각해야 한다”고 외교적인 고려를 당부했다.
평창올림픽 이후 북한 문제의 향방에 대해서는 “평창 이후 북한의 대응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지난해보다 국제사회의 대북 압력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간 북한을 순망치한 관계로 본 중국의 태도가 과거와 다르고 미국은 일관되게 최대한의 압박을 통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겠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한편 반 전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특사로 방북할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그런 기회가 있으면 당연히 하겠다. 전 유엔 사무총장으로든 시민의 한 사람으로든 어떤 일이라도 할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다만 “청와대와 구체적인 협의를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반 전 총장은 국제 원로 자문 그룹인 ‘디 엘더스’의 회원으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을 만나 북핵 문제에 대해 협의했다고 밝혔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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