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살며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아빠 김모(38)씨는 지난해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맞벌이 엄마인 이모(35)씨가 아이 한 명당 최대 1년씩 주어지는 육아휴직을 모두 사용해 아이들을 돌봤지만 미취학 아동인 자녀들은 여전히 부모의 손길을 필요로 해서다. 김씨는 “어느 날 딸 아이가 ‘나는 아빠가 싫다’고 한 말이 육아휴직을 결심한 결정적 이유가 됐다”며 “하지만 지금까지 육아휴직을 쓴 남성 직원이 단 한 명도 없는 회사에 아이 때문에 당분간 쉬겠다는 말을 꺼내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에서 남성 근로자의 육아휴직은 지난 1995년 처음 허용됐다. 다만 당시 아빠는 엄마를 대신해서만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었다. 2001년이 돼서야 제도적으로 부모 각각에게 최장 1년씩의 육아휴직이 보장됐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뀔 동안 남성에게는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던 남녀고용평등법상의 육아휴직 제도를 되살려내 당당하게 활용하는 아빠들이 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를 이끌고 있는 이들은 ‘남자가 무슨 육아휴직’ ‘돈 벌어다 주는 게 아빠의 역할’ 등 사회적 고정관념을 깬 ‘용감한’ 아빠들이다.
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 부문 남성 육아휴직자는 전년(7,616명)보다 58.1% 증가한 1만2,043명이다. 연간 남성 육아휴직자가 1만명을 넘어선 것은 남성 육아휴직이 도입된 후 22년 만이다. 남성 육아휴직자가 늘며 전체 육아휴직자에서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도 13.4%에 달했다.
한국의 남성 육아휴직률이 증가 추이를 보이고 있지만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가구(OECD)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남성 육아휴직률은 스웨덴 45%, 노르웨이 40.8% 등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남성 육아휴직이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먼저 직장문화를 꼽는다. 기업이 남성 육아휴직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을 다녀온 한 직장인은 “상사가 싫은 내색을 했지만 아이 엄마가 아파 육아휴직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며 “황당한 사실은 육아휴직을 쓰고 복귀한 뒤 지방 발령이 났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돈 문제도 있다. 당장 생활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육아휴직을 못 쓰는 아빠들도 많다. 정부가 육아휴직 지원 수준을 강화하고 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남성 육아휴직의 가장 큰 걸림돌은 사내 눈치법과 성 역할에 대한 편견”이라며 “성평등적 직장문화는 기업의 생산성 향상은 물론 국가 지속가능성 제고에도 기여하는 만큼 국가의 지원과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세종=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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