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산을 포함한 수입 철강에 던진 보복관세 시행을 열흘 남겨둔 가운데 철강업계 등은 쿼터제 도입과 품목 제외를 현실적인 협상 목표로 잡고 논의에 착수했다. 미국의 통상 제재망을 완전히 빠져나가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해 일부 물량에 한해서라도 수출길을 틔우기 위해 막판 변론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12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철강업체는 지난 9일부터 미국에 쿼터제 도입을 요구하기로 가닥을 잡고 실무 준비에 돌입했다. 쿼터제는 일정 기준을 정해두고 이를 넘어서는 물량에 대해서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되 그 외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관세를 매기는 형태다. 업계 고위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안을 가져오는 국가와 대화할 여지가 있다고 밝힌 만큼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강업체들은 철강협회를 중심으로 미국에 요구할 쿼터 기준을 잡기 위해 태스크포스 발족을 준비하고 있다. 태스크포스를 통해 각 업체들이 가능한 물량 조절 수위를 제시하면 정부가 이를 취합한 뒤 미국과의 협상장에 나서는 모양새다. 일차적인 목표로 지난해 수출 물량(373만톤) 수준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할 계획이다. 다만 미국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적어 협상 과정에서 그보다 낮은 기준을 제시할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업계 고위관계자는 “모든 철강재에 일괄적으로 폭탄을 맞는 것보다는 피해가 덜할 수 있다”며 “트럼프 정부가 중간선거를 앞두고 폭주하고 있지만 중간재인 철강 가격이 오르면 미국 내 엔드유저가 타격을 받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닐 테니 저율관세할당(TRQ)이나 자율규제협정(VRA)을 건의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일부 철강재에 대한 관세 면제를 요구하는 안도 마련하고 있다. 미국 내 수요업체를 우군 삼아 한국 철강업체가 미국에 기여하는 몫을 호소한다는 전략이다. 현지에서 대체 불가능한 일부 한국산 자재가 끊기면 이를 가져다 쓰던 업체에도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리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자재를 가져다 쓰는 UPI(포스코 현지 합작업체)등이 높은 자재조달 비용을 견디다 못해 문을 닫으면 현지 고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할 계획이다.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철강업계 등이 현실적인 목표로 잡고 ‘감형’ 이끌어내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우리 정부의 거듭된 호소에도 232조에 한국을 포함했다. 안보를 운운하고 있지만 정부는 경제적 유인책 없이는 회유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비즈니스맨’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일부 출혈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미국과 오랫동안 힘겨루기할 여유가 없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0일 이내에 232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추가관세 부과 결정 전 한국에서 철강재를 싣고 떠난 배가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수백억대 관세를 내야 할 처지다. 현대제철의 경우 30억원의 추가 관세를 부담해야 하고 세아제강은 전체 관세가 450억원까지 치솟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철강재가 미국 시장에서 송두리째 밀려날 가능성도 커진 상황이다. 미국이 이미 개별 품목을 저격해 고율의 보복관세를 부과해 25% 추가로 부과하는 232조는 한국 철강에 사실상 사형선고다.
미국이 뱁새눈을 뜨고 지켜보는 유정용 강관을 보면 현재 수출가격이 톤당 900달러 수준이다. 세아제강은 연례재심 예비판정에서 유정용 강관에 6.66%, 넥스틸은 46.37%의 반덤핑관세를 부과받았다. 25%의 관세가 더해지면 관세율은 세아제강 31%, 넥스틸은 71%까지 뛴다. 이를 짊어지면 유정용 강관 수출가격이 1,180~1,540달러까지 솟구친다. 현지 시장 가격이 1,000달러 수준에서 형성돼 있는 만큼 가격경쟁력에 치명타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가를 내놓는 일부 국가에 관세를 매기지 않을 수 있다고 여지를 남기면서 주요 수출국 중 한국만 ‘독박’을 쓰게 될 위험성도 커졌다. 이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으로 얽힌 캐나다(대미 수출 1위)와 멕시코(4위)는 잠정 면세 판정을 받은데다 호주까지 포위망을 빠져나갔다. 가만히 있다가는 한국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해야 할 판이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캐나다나 멕시코처럼 주요 국가가 빠져버리면 미국 철강 시장 가격은 기껏해야 10% 정도 오르는 데 그칠 것”이라며 “협상을 끌다가는 한국만 배 이상의 짐을 짊어져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지도 모른다”며 초조해했다.
/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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