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유럽어를 사용하는 켈트족은 고대부터 유럽 곳곳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 이들은 지금의 영국과 스페인·프랑스·독일·스위스는 물론이고 흑해 연안까지 진출했다. 이들이 이탈리아반도를 침략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400년께다. 이탈리아에서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를 먹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냉장·냉동 시설이 없던 시절 이탈리아 북부 파르마 지역에 정착한 켈트족이 돼지고기를 장기간 보관할 목적으로 고안한 것이 ‘살라미(Salami)’다. 살라미는 돼지고기와 쇠고기에 동물성 지방과 소금·향신료·포도주 등을 가미한 뒤 건조시킨 소시지다. 짜기 때문에 조금씩 썰어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어로 살라미라고 부르지만 어원은 이탈리아어인 ‘살라메(Salame)’다. 소금을 뜻하는 ‘살레(Sale)’에 접미사 ‘아메(ame)’가 붙어 만들어진 것이다. ‘소금에 절인 고기’ 정도의 뜻이다.
이 단어가 정치 무대에서 사용된 것은 헝가리에서다. 헝가리 공산주의자들은 1945년 11월 소련 점령 이후 첫 선거에서 뜻밖의 패배를 당하자 반대세력 제거에 나섰다. 라코시 마차시 서기장은 공산당 회의에서 “비공산주의자들을 살라미 슬라이스처럼 섬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반대파에 파시스트라는 딱지를 붙여 차례로 몰아냈다. 처음에는 우익을, 그다음에는 중도파들을 처리한 다음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는 좌익세력까지 소시지 자르듯 하나씩 잘라냈다. 여기서 ‘살라미 전술’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적대세력을 조금씩 제거해 권력을 장악하는 방법을 지칭하는 말이다.
최근 북한 핵 협상과 관련해 이 전술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한미 보상을 전제로 한 단계적 비핵화 방안을 다시 거론한 것이다. 북한은 지난 1994년 제네바합의 이후 줄곧 단계 전술을 내세워 보상만 얻어내는 기만책을 되풀이해왔다. 핵 협상 단계를 동결-불능화-신고-검증-폐기 등 여러 조각으로 쪼갠 뒤 단계별로 엄격한 이행 조건을 내걸면서 핵 폐기를 무산시킨 것이다. 4월과 5월 북한과의 핵 담판을 앞둔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이 같은 기만 전술에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오철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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