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오래전 일도 아니다. 2016년 3월16일 캐나다의 제약사인 밸리언트파마슈티컬스인터내셔널이 사실상 파산 선언을 했다.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콘택트렌즈 브랜드 바슈롬으로 유명했던 밸리언트는 300억달러 채권의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에 앞서 주가는 반토막이 났다. 하루에만 120억달러(14조3,000억원)의 시가총액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밸리언트의 몰락은 회계부정 의혹에서 출발했다. 감독당국이 매출조작을 조사하기 시작하며 투자자들의 불신은 커졌고 투매로 이어졌다. 그렇게 밸리언트는 ‘제2의 엔론’으로 추락했다.
대박을 기대하며 개인투자자들이 덤벼들었던 바이오주에 폭탄이 터졌다. 임상실험 실패도 한미약품 사태와 같은 수출실패도 아니다. 잘 알지도 못했던 회계이슈가 주가의 발목을 잡았다. 연구개발(R&D) 비용을 무형자산으로 보느냐, 비용으로 처리하느냐에 따라 바이오기업의 실적은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섰다. 지금까지 회계처리가 적자를 흑자로 바꾸는 마법을 부렸던 셈이다.
바이오기업의 감사를 진행한 회계법인들은 바짝 긴장했다. 일감을 줬다고 너그럽게 ‘적정’ 의견을 냈다가는 대우조선해양 사태와 같은 회계부실 책임을 같이 져야 한다. 금융감독원이 ‘개발비 인식·평가의 적정성’을 강조하기도 했지만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트라우마가 회계법인을 깐깐하게 만들었다. 결국 지난 22일 삼정회계법인은 시가총액 2조원의 바이오기업 차바이오텍의 감사의견을 ‘한정’으로 제출했다. 지난해 5억3,700만원의 영업이익에 대해 삼정회계법인은 무형자산으로 인식한 R&D 비용 14억1,900만원을 비용으로 처리해 8억8,200만원의 적자라고 지적했다. 차바이오텍은 관리종목으로 지정됐고 주가는 3일 동안 47%나 하락하며 2조원의 시가총액은 1조원으로 줄었다.
차바이오텍 충격의 근본원인은 투자자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회계이슈와 상장규정이다. 국내 상장사에 적용되는 국제회계기준(K-IFRS)에 따르면 개발 단계의 지출은 무형자산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개발에서 임상을 거쳐 허가까지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는 바이오산업의 특성상 어느 시점에서 자산으로 인식할지는 제각각이다. 차바이오텍에서 보듯이 R&D 비용의 자산 인식은 영업이익을 늘려 재무구조를 개선한다. 뚜렷한 매출이 없는 바이오기업이 회계 관행을 이용해 실적을 부풀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바이오기업이 억울한 점도 있다. 엄밀히 말해 지금까지 회계처리가 불법은 아니다. 차바이오텍은 상장폐지 요건이 될 수 있는 4년 연속 적자를 면하기 위해 영업이익 적자를 벗어나려 했고 셀트리온은 상용화된 바이오시밀러와 임상 중인 신약의 회계처리는 달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이오기업의 회계처리 논란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봐야 한다. R&D 비용을 무형자산으로 인식한 기업은 향후 신약개발에 실패할 경우 자산으로 잡힌 부분이 전액 손실로 나올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이 있다. 이러한 위험이 현재 주가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주가가 오르면 스톡옵션을 행사해 차익을 행사하거나 악재가 나오기 전 보유주식을 처분해 차익을 남기려고만 했지 어느 바이오기업도 이런 위험을 투자자들에게 고지하지는 않는다. 그냥 투자자의 책임일 뿐이다. R&D 비용의 회계처리 문제는 올해 갑자기 불거져 나온 이슈도 아니다. 회계기준이 바뀌면서 충분히 예고됐고 바이오기업 자체적으로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었다. 주가가 하락하자 수익사업 확대·인수합병(M&A)·자본확충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바이오기업들은 R&D 비용의 무형자산화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복제약의 경우 실패 위험이 없어 자산으로 인식해도 미래 기업가치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명확한 근거를 공개해야 한다. R&D 비용 회계처리에 대한 지적이 나올 때마다 일부 바이오기업의 일상적인 말 바꾸기는 투자자의 혼란만 키운다. 투자자들은 바이오기업의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보고 투자한다. 바이오산업의 성장을 위해서도 투명한 회계정보는 필수조건이다./hs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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