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을 앞둔 작년 말 한국상하수도협회에서 상하수도 시니어 전문가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약관에 교수직을 시작하여 상하수도 분야에서 강의하고 연구를 하던 것이 그리 먼 옛일도 아닌 것 같은데, 어느새 내 눈에 ‘시니어’란 단어가 선명하게 들어왔다. 처음 경로카드를 발급 받고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어색함에서 익숙해지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던 것처럼 은퇴 후 나에게 주어질 시니어라는 호칭 또한 그러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인구 절벽 시대의 도래로 벌써부터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 인력 공백에 대한 조심스러운 우려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고령 인구 증가와 사회 전반적인 일자리 부족으로 아직 활동 여력이 남아 있는 전문 인력들이 사회 참여의 활로를 찾지 못하고 사장되고 있다. 무작정 자영업을 시작했다가 곤경에 처하기도 하고, 본래의 업과 무관한 자격증에 도전하기도 한다. 평생 힘겹게 쌓아올린 경력과 노하우는 단절되고 스스로의 가치를 상실한 이들을 사회적 문젯거리 정도로 치부하는 시각도 있다.
내가 평생 몸담은 상하수도 분야를 살펴보면, 업계는 중소기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업무 환경도 열악하여 기피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공무원 및 공공기관에서도 타 분야에 비해 민원 발생이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반면 성과에 대한 인정은 거의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타 분야에 비해 전문 종사자들에 대한 처우나 지원이 한참 부족하다. 이 전공을 희망하는 학생 수가 매년 줄어들고 상대적 박탈감에 타 분야로 전향하는 젊은이들도 늘어간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시니어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말은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수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
상하수도는 안전하고 건강한 물 공급으로 국민 생활의 위생안전을 지키는 근간이며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주춧돌이다.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상하수도 분야 공무원들의 장기근속이 많아 전문성이 높고 자부심 또한 남다르다. 19세기 콜레라 참화를 경험하였던 유럽에서는 공중위생 기여도에 있어 지금도 의사보다도 상하수도 기술자를 더 높게 평가한다. 영국 공중위생의 아버지로 칭송되는 채드윅이나, 파리 상하수도 계획 수립의 공로로 작위를 받고 국립묘지에 안장된 벨그랑 등은 지금까지도 사회적으로 존경 받고 있다.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와 물 분쟁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물산업이 반도체 시장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측이 나와 있으며, 세계 물시장의 핵심은 상하수도 설비 및 운영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 상하수도와 물산업 분야 전문 공공기관인 한국상하수도협회는 지난 3월 시니어 전문가 약 60명을 1차로 선정했다. 설계, 시공, 관망관리, 설비운영 등 상하수도 분야별 10년 이상 경력자를 모집하여 협회 교육강사로 활동을 지원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정수장 및 하수처리장에 대한 컨설팅 참여 등 활동을 지원하게 된다. 금년도 시범운영 후 점진적으로 인원을 확대하고 온라인 플랫폼 구축으로 상하수도 시니어 전문가를 공유자산으로 사회에 환원하고 나아가 관련 분야 종사자들의 자부심을 고취한다는 계획이라 하니 참으로 고무적이다.
그렇긴 해도 사회의 정규 구성원으로 활동한 시간을 보내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시니어들이 다시 앞장서 휘젓고 나가길 원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젊은이들의 일자리 찾기에 걸림돌이 되어서도 안 된다. 다만 값진 경험을 끌어안은 선배이자 오늘의 풍요를 지켜온 가장으로 제 가치를 인정받으며, 존중받는 시니어로 함께 미래를 열어 나갔으면 한다.
/김동호 기자 dongh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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