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해법 중 하나로 ‘리비아식(式)’이 자주 거론되는 가운데 개념이 다르게 통용돼 혼란이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완전한 비핵화 이후에야 보상이 주어지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최근 “비핵화를 3단계로 나눠 각 단계마다 미국의 보상이 들어가는 것”이라고 차이를 보였다. 리비아식 해법은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매 단계마다 보상이 이뤄진 것이 리비아식 해법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리비아 핵 문제가 막 해결된 2007년 펴낸 보고서를 보면 리비아 비핵화 및 대량살상무기(WMD) 폐기는 2004년 1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22개월간 3단계에 걸쳐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각 단계마다 항공기 운항 정상화 등 미국의 보상이 주어졌다. 완전한 핵 폐기 이후에야 보상을 주는 것은 핵 보유국에 ‘무릎을 꿇으라’는 의미로, 오히려 반발을 살 수 있으므로 미국은 단계마다 적절한 ‘당근’을 쥐어 준 것으로 평가된다.
우선 2004년 1월 리비아는 1단계 조치로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에 가입하고 핵무기 설계정보, 핵무기 및 미사일 프로그램 주요 장비와 문서를 미국에 넘겼다. 2월부터 9월까지는 2단계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포괄적 핵사찰을 허용했고 원심분리기 부품, MTCR급 미사일 장비, 스커드-C 미사일, 미사일발사대 등 1,000톤 이상의 WMD를 미국으로 이송했다. 1980년대 공급된 17kg의 농축우라늄(HEU)도 러시아로 반송했다. 이어 3단계 조치가 진행돼 핵 프로그램이 폐기됐고 미 국무부는 2005년 10월 “리비아 내 핵무기 개발과 관련된 모든 원료와 설비가 제거되고 활동이 중단됐다”고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2004년 4월 대부분의 상거래, 금융거래, 투자를 허용하는 2차 경제제재를 해제했다. 6월에는 리비아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해 24년 만에 외교관계를 회복했다. 2단계 조치가 완료된 9월에는 양국 간 항공기 운항을 허용하고 13억 달러 규모의 리비아 자산 동결을 해제하는 등 경제제재를 공식 해제했다. 미 국무부의 공식 발표 이후 2006년 5월에는 리비아 주재 연락사무소를 대사관으로 승격하고 이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 러시아·IAEA·미 에너지부 지원 하에 저농축 우라늄도 제공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을 강조하고 있고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도 북핵 폐기 조치에 따른 단계별 보상을 의미하는 ‘행동 대 행동’을 언급하고 있어 리비아와 같이 초단기간에 단계적으로 비핵화와 보상이 주어지는 구상이 힘을 얻고 있다. 미 워싱턴 내 일각에서도 북한에 일방적인 완전한 비핵화만 요구할 경우 북한이 대화에서 이탈할 수 있어 단계별로 적절한 보상을 주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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