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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보라카이의 눈물





1519년 8월10일 포르투갈 출신의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스페인 국왕의 후원하에 새로운 항로 개척에 나섰다. 당시 희망봉을 돌아 아시아로 가는 항로는 포르투갈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젤란은 새 길을 뚫어야 했다. 5척의 배에 270명의 선원을 태운 마젤란은 대서양을 건너 남아메리카 대륙의 남단에 있는 해협을 통과한 뒤 망망대해로 나갔다. 이들은 1521년 3월16일 태평양에 있는 작은 섬에 도착했다. 스페인을 떠난 지 1년 7개월 만의 일이었다. 마젤란은 지금의 필리핀 중부에 있는 사마르섬에 상륙한 뒤 십자가를 꽂고 미사를 올렸다. 유럽인들이 필리핀 땅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이다. 이후 마젤란은 필리핀에 대한 탐험활동을 계속한다. 세계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세부와 보라카이 등도 이 시기에 발견된 곳이다.

스페인 원정대가 상륙하기 전 보라카이 섬에는 아티(Ati) 족으로 불리는 원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수세기 동안 소수 부족 단위로 농사와 어업에 종사하거나 코코넛 열매에 의존해 생활을 해왔다. 총면적이 11㎢에 불과한 이 작은 섬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원주민 마을이 드문드문 있는 한적한 섬에 불과했다. 보라카이가 세계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90년 BMW가 개최한 열대해변 핸드북 투표에서 화이트 비치가 세계 최고의 해변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면서부터다. 이후 보라카이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전기와 수도가 들어오고 다이빙 명소와 음식점을 비롯한 상업시설은 물론이고 은행과 경찰서·병원 등 공공 기관들이 속속 갖춰지면서 세계적인 휴양지로 변모했다. 고운 모래와 야자수가 어우러진 해변 풍광이 각광 받으면서 지난해에만 200만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보라카이를 찾았다.



이 보라카이 섬이 오는 26일부터 6개월간 문을 닫는다.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오수와 폐기물 등으로 환경오염이 극심해졌기 때문이다. 필리핀 정부는 환경 유해시설 100여곳에 대해 철거 명령까지 내렸다. 보라카이 사례는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도 인간의 손을 타면 쉽게 망가진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아무쪼록 보라카이가 정화과정을 거쳐 다시 관광객들의 품으로 돌아오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오철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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