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여행 버스’는 전남 장성중앙초등학교 학생들이 만든 교육 소프트웨어다. 조선시대 관련 용어가 표기된 커다란 종이 위를 아이들이 작명한 햄스터 로봇이 정해진 루트로 오간다. 특정용어 위를 지나면 음성설명이 뒤따른다. ‘정도전’ 위를 지나면 인물을 설명하는 음성이 흘러나오는 식이다. 옆 칸으로 이동한 로봇은 KBS 드라마 ‘정도전’을 소개한다.
#2. 주부 이선영(가명)씨는 집 근처 대형마트가 운영하고 있는 문화센터에서 코딩수업을 듣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진학을 앞둔 딸아이가 코딩수업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행학습을 위해 수강신청을 했다. 이씨는 6개월 후 스크래치 코딩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목표다.
세계는 현재 코딩 ‘열공(열심히 공부하다)’ 중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실리콘밸리 같은 첨단을 걷는 도시에서나 익숙했던 이 새로운 컴퓨터 언어는 동네 대형마트의 문화센터에서도 쉽게 목격될 정도로 세계 구석구석에 파고들고 있다. 코딩 열풍은 인간의 사유범위가 확장됐음을 의미한다. 인간과 인간, 혹은 인간과 일부 동물 사이에서만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소통의 영역은 인간과 기계 간 관계로 나아갔고 코딩은 이 과정에서 인간과 기계를 중개하는 필수적 수단이다.
◇영어보다 중요해진 코딩수업=코딩에 대한 흔한 오해가 코딩을 기술로 보는 시각이다. 그러나 엄연하게도 코딩은 기술이 아니라 언어다.
이 말의 힌트는 지난 2014년 마이클 고브 영국 교육부 장관의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고브 장관은 “글로벌 공용어인 영어보다 코딩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1,000년 이상 세계를 지배했던 영어의 탄생지인 영국이 언어 헤게모니의 전환을 선언한 것으로 언어의 헤게모니는 숫자 1과 0의 조합언어인 코딩으로 빠르게 이관되고 있다.
모든 언어가 그러하듯 코딩은 커뮤니케이션에 국한되지 않는다. 언어는 매개체일 뿐 커뮤니케이션은 창의성 배양,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더 큰 목표를 지니고 있다. 코딩의 도달지점도 여기에 있다.
싱가포르 주롱에 위치한 한 유치원. 이곳에서는 싱가포르 정보통신미디어개발청(IDA)이 추진하는 코딩 교육프로그램 ‘플레이메이커’가 운영된다. 고작 4세에 불과한 어린이들은 코딩로봇 ‘비봇(Bee-Bot)’에 명령어를 입력하고 그에 맞춰 움직이는 로봇과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이처럼 코딩수업이 일방적 지식전달이 아닌 원리이해, 놀이와의 접목 등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어릴 때부터 창의성을 길러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따른 것이다. 코딩 교육이 추구하는 창의성은 섞인 곳(융합)에서 더 쉽게 찾을 수 있고 학문 간 경계는 사라질수록 좋다.
◇전 세계가 달려든다=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코딩 교육은 흡사 ‘사즉생’의 각오를 방불케 한다.
발트해 연안 소국 에스토니아는 1992년 세계 최초로 코딩의무교육을 도입하며 코딩 열풍의 불씨를 당겼다. 이후 이스라엘(2011년), 인도(2013년), 영국(2014년), 핀란드(2016년) 등이 코딩의무교육 대열에 합류했고 스웨덴은 아예 초등학교 1학년부터 코딩을 가르친다. 우리나라는 올해 중고교 과정에 코딩 교육을 도입한 데 이어 내년부터 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이 코딩의무교육을 받는다.
코딩 교육 선점이 낳은 씨앗이 곧장 꽃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은 코딩의 확산을 자극하는 또 다른 배경이다.
코딩 교육의 발화점이었던 에스토니아는 인터넷 전화 스카이프와 글로벌 핀테크 기업 트랜스퍼와이즈, 파일공유시스템 카자 등을 탄생시켰고 정부 주도의 손쉬운 창업 정책과 스카이프 등 유수 기업의 매각 자금 유입까지 더해지며 진정한 정보기술(IT) 강국으로 올라섰다. IT 강국을 주장하면서도 인터넷 속도 증가에만 매달려왔던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은 “인공지능(AI), 로봇 등 컴퓨터와 대화하고 공생하는 법을 익혀야 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소프트웨어 분야 일자리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전 세계적으로 IT 분야 인력 부족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는데 일자리 안전망 확보와 국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도 공교육에서의 코딩 교육 강화는 필수”라고 지적했다.
◇코딩은 곧 일자리=일자리 창출은 코딩 열풍을 읽는 또 다른 열쇳말이다. 4차 산업혁명은 재래식 일자리의 소멸을 잉태하고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오는 2030년까지 92만명이 새 일자리를 찾고 80만명이 직업을 잃을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운송·서비스·제조업 등 전통적인 직업군의 일자리 감소가 불가피해졌다. 이에 반해 정보·통신·공학·과학 등 코딩이 핵심인 소프트웨어 관련 일자리는 크게 늘 것으로 전망된다.
파이터치연구원이 발표한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핵심인력 현황 및 개선방향’ 보고서를 보면 정보통신·과학 분야의 전문가 부족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으로 분석됐다. 분야별로는 하드웨어의 전문가 부족률은 1.6%지만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 전문가 부족률은 3.6%(소프트웨어 개발 3.6%, 웹 전문가 3.5%)로 두 배 이상 높을 것으로 예상됐다.
홍성민 휴넷 에듀테크연구소 소장은 “일찌감치 IT산업을 국가 경쟁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북유럽에서는 구인난을 겪고 있는 소프트엔지니어링 분야로 인력을 재배치할 수 있도록 공교육 차원에서 코딩 교육을 도입하는 한편 성인 재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일자리 미스매치를 해결하는 전략을 취했다”며 “컴퓨터와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 인구가 많을수록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더 많은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분석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