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개봉한 ‘바람의 색’은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똑같은 운명을 간직한 ‘료’와 ‘아야’의 이야기를 담은 신비롭고 환상적인 판타지 로맨스.
순수하고도 투명한 로맨스를 이 보다 잘 만들어내는 감독이 있을까. 1989년, ‘비 오는 날 수채화’로 스크린에 데뷔한 곽재용 감독의 진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전작인 ‘비 오는 날 수채화’, ‘클래식’,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에 이어 이번 ‘바람의 색’에도 등장하는 빗속 장면에 대해 “비는 흔히 우울하고 어두운 이미지로 생각하기 쉽지만 제 영화에서는 로맨틱한 사랑의 매개체로 비를 사용했다. 이번 영화에서도 장소 섭외에 애를 먹으면서도 빗속 장면을 아름답게 그리고 싶었다.”고 명장면으로 꼽았다.
곽재용 감독은 남성적인 영화가 트렌드가 된 현 영화계에서 단연 독보적인 존재다. 특별히 ‘멜로’를 사랑하는 감독으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그는 “여배우가 나오지 않는 영화는 상상해 본 적이 없다”고 속내를 전했다. 점점 여성 영화가 사라지는 이 시대에 그의 뚝심은 분명했다.
“시나리오를 쓰다보면, 사랑 이야기를 많이 쓰게 된다. 여성이 사랑만 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감성이 사랑 이야기에 제일 잠 담기는 것 같다. 주연으로 여배우가 나오지 않은 영화를 상상해보지 않았다. 여배우가 조연에 그치거나 단순히 사건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존재로만 나오는 건 원치 않는다.”
곽재용 감독은 멜로 드라마로 사용할 소재나 스토리가 고갈되다 보니까 국내에서 ‘멜로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멜로 전문 작가나 감독을 발굴해내지 못하면서, “멜로 영화들이 희생 당하고 있음”에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250만을 돌파한 소지섭 손예진 주연의 멜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흥행 소식에 반가움을 표하기도.
“멜로 드라마로 사용할 소재가 고갈되다보니까, 일본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들어오는건데, 앞으로 일본식 멜로가 만들어지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너의 이름으로’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그렇듯 일본은 타임슬립이란 게 영화로 풀어가는 ‘키’ 라고 말 할 정도로 굉장히 빈번하다. 흔히 이를 두고 타임슬립을 통한 판타지라고 설명 하는데, 우리나라도 멜로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선 판타지에서 끌어와야 하지 않을까. 멜로 이야기를 잘 풀어낼 수 있는 작가와 감독 역시 필요하다.”
곽재용 감독은 자신의 필모그래피 중 ‘바람의 색’을 가장 아낀다고 했다. 그에게 러브 스토리란 ‘바람의 색’ 그 자체이기 때문.
“주인공을 둘러싼 환경은 작품마다 달라져도 사람을 사랑하는 감정은 같다. 관객들이 ‘바람의 색’이 빚어내는 스케일과 인물들이 감정 흐름, 아름다운 풍경, 신비한 분위기와 사랑에 빠졌으면 좋겠다. 주인공으로 일본 배우 후루카와 유우키가 나오는데, ‘엽기적인 그녀’의 차태현이 생각 날 정도로 정말 똑똑한 친구다. ‘중간에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는 게 없을 정도로 NG가 없다. 처음 봤을 때 키가 크고, 너무 슬림해서 내가 ‘젓가락 잠자리’로 불렀다. 하하. 명석한 배우이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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