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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중종반정, 박원종이 누이의 복수를 위해 일으켰다?





15일 방송되는 KBS1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중종반정은 누이를 위한 복수인가?’ 편이 전파를 탄다.

연산 12년 9월, 하룻밤 사이에 왕이 바뀌었다. 폭군 연산군은 폐위되고, 왕실의 웃어른 자순대비의 허락으로 새로운 왕이 즉위했다. 조선 건국 이래 신하가 왕을 바꾼 첫 번째 사건이었다. 바로 중종반정이다.

▲ 핵심인물 박원종은 누구인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연산군의 폭정. 이를 막으려는 움직임의 중심에는 박원종이 있었다. 왕족과 사돈을 맺은 명문가 집안의 무관(武官)으로, 성종에 이어 연산군에게도 신임 두터웠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반역, 아니 반정을?

“월산대군 부인 박씨가 죽었다. 사람들이 왕에게 총애를 받아 잉태하자 약을 먹고 죽었다고 말했다.”

- <연산군일기>, 연산12년 7월

월산대군 부인 박씨는 박원종의 첫째 누이로, 당시 50세가 넘는 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산군과 간통했다는 추문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박원종의 ‘그날’, 개인적 복수심에서 비롯된 것일까? <백성대토론>에서 당사자를 잠시 불러 직접 물어봤다.

▲ 중종반정, 역사를 바꾸다

연산군 말, 민심이 흉흉해지고 그릇된 왕을 저지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대신들은 폭정보다 역모가 두려웠다. 누가 먼저 왕을 끌어내릴 것인가? 누구의 뒤를 따를 것인가? 바야흐로 조선을 둘러싼 눈치싸움이 시작됐다. 박원종은 문무(文武) 모두 뛰어난 이장곤이 난을 일으킨다는 소문에 역사적 선택을 내렸다.

반정(反正) : 바르게 되돌린다



박원종의 거사가 ‘반정’인 이유는 당시 시대정신에 따른 평가이다. 개인적 동기를 떠나 중종반정은 국정을 농단한 군주를 끌어내린 명분 있는 행위였다. 중종반정, 그날의 이야기를 두고 벌어지는 팽팽한 설전을 만나보자.

▲ 누구를 위한 반정인가?

“사방에서 뇌물을 받았으며, 연산군이 쫓겨나자 궁에 있던 기생들을 데려와 첩으로 삼았다. 또한 분수에 넘치는 집과 음식으로 사치를 일삼아 당시 사람들이 그릇되게 여겼다.”

- <중종실록>, 중종 5년 4월

박원종은 공신 책봉 문제로 반정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받게 된다. 책봉된 정국공신은 총 117명으로, 그 대상이 친인척이거나 드러누워 떼를 쓰는 등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책봉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벼슬은 기본, 면세부터 시작해서 엄청난 경제적 혜택이 뒤따랐으니 다들 공신이 되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중종반정은 상벌이 명확하지 못했다. 공신 책정에 있어서 공정하지 못했고, 적폐 청산도 완전히 되지 않았다. 박원종을 비롯한 반정 주도세력 역시 부패의 현재진행형이었으니! 거사는 이루었지만 청사진이 없었던 이들은 반만 성공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이 사건을 ‘중종반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뭘까?

[사진=KBS1 ‘역사저널 그날’ 예고영상캡처]

/서경스타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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