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화된 전기자동차의 원조는 널리 알려진 미국 테슬라의 ‘로드스터’가 아닌 제너럴모터스(GM)사의 ‘EV1’이다. 무려 20여년 전인 1996년 시판됐으니 전기차의 시조라고 부를 만하다. 당시 GM 전기차의 출현은 1990년대 초 미 캘리포니아주가 만든 ‘무공해차 의무판매법’이 계기가 됐다. 극심한 도심 대기오염을 줄이고자 자동차 제조사가 친환경차를 일정 비율 이상 판매하도록 법제화한 것이다. GM 전기차는 얼마 가지 않아 시장에서 사라졌지만 전기차 판매촉진법으로 대중이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만은 확실하다.
물론 우리나라는 아직 친환경차 의무판매제가 없다. 국내 자동차회사가 전기차를 굳이 권유하지 않으니 소비자도 찾지 않고 기업은 소비자들의 눈길이 가지 않는 전기차 생산에 힘쓸 이유가 없다. 이런 까닭에 일각에서 ‘디젤게이트’의 장본인인 폭스바겐이 친환경차 의무판매 규제가 있는 미국에는 전기차를 팔고 법이 없는 우리나라에는 ‘배출가스 조작 경유 차량’만 판매하는 것이라고 쏴붙인다. 비약이 심한 지적이지만 논리가 없지 않다. 연비를 따지는 소비자는 경유차를 선택하고 자동차회사는 시장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은 우리 정부의 판매중지 처분을 받아 지난해 국내 판매량이 공식적으로는 제로였다. 그런 폭스바겐이 올해 판매를 재개하면서 내놓은 신차 모델이 또 경유차다.
노후 경유차 조기 폐차를 세금으로 지원하는데 그 돈을 보태 다시 경유차를 구입한다면 난센스다. 이 같은 불합리한 구조가 지금껏 환경정책의 근간을 이뤘다.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환경정책은 ‘원인 제공자’의 입장과 처지부터 헤아리는 데 바빴다. 최근 서울시가 올 하반기부터 미세먼지가 심한 날 최대 220만대에 달하는 노후 경유 차량의 서울 진입을 제한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강력한 비상대책이라는 평가에 벌써부터 예외로 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친다. 하지만 예외가 늘수록 정책 실효성은 떨어진다.
정책의 한계성 때문에 환경대책은 항상 공허한 메아리였고 미세먼지가 ‘나쁨’일 때 마스크를 챙기라는 식의 각자도생으로 귀결됐다. 정책이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면 원인 제공자가 친환경 규제를 감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동안 중국발 미세먼지가 우리나라의 대기오염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해온 우리 정부의 일관된 입장도 이제 수정돼야 한다. 정부가 중국 때문이라고 늘 주장해왔는데 이제 와서 기업과 서민들에게 미세먼지를 줄이라고 강요하느냐는 반발만 낳았다. 객관적 데이터가 부족해 중국의 태도 변화를 이끌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치를 다해 오염물질 배출량을 줄인 후 외교 채널로 중국에 요구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중국 주요 도시의 대기 질이 5년 전보다 30% 정도 개선됐다는 조사 결과가 중국 정부는 물론 해외 연구에서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언제까지 중국 탓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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