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에 연일 불만을 내비치는 가운데 후임 후보군 선별 작업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의 임기가 내년 5월까지인 점을 감안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연내 후보를 선정해 그를 압박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게 제기된다. 월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상 새 의장은 백악관의 뜻에 맞춰 내년 연준의 금리 인하 기조를 강화할 인물로 선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내년 11월 3일 미국 중간선거 전까지 급격히 늘어나는 재정 적자 이자 부담을 줄이고 관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대폭적인 금리 인하가 필수인 까닭이다. 다만 관세에 따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조짐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경제 현실에 맞지 않는 금리 결정을 내릴 경우 글로벌 경기가 한층 더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美재무 “금주 차기 연준 의장 후보 1차 면접 마무리…트럼프에 3~5명 추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지난 2일(현지 시간) CNBC와의 인터뷰에서 차기 연준 의장 후보에 관한 질문을 받고 “(인터뷰를) 이제 절반 이상 진행했다”면서 “1차 인터뷰는 다음 주에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오는 10일까지 첫 인터뷰를 끝내겠다는 뜻이었다. 베선트 장관은 이어 “그 다음에 2차 인터뷰를 하고 3~5명의 강력한 후보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추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선트 장관이 파월 의장 후임 인터뷰에 관해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 8월부터 인터뷰가 임박했다는 발언은 여러 차례 내놓았다. 베선트 장관은 8월 19일에도 CNBC와의 인터뷰에서 “11명의 강력한 후보자를 9월 1일 노동절 직전이나 직후에 만날 것”이라며 “명단을 줄여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후보들에 관해 “지금 연준에 있거나, 과거 연준에 있었거나, 민간 부문에 있는 사람들”이라며 “열린 마음으로 그들 모두를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4일 베선트 미국 장관이 같은 달 5일부터 차기 연준 의장 후보자 11명의 후보자에 대한 면접을 시작한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베선트 장관은 지난달 22일에도 “파월 의장을 이을 후보자 11명 중 10명에 대한 면접을 다음주 말까지 완료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그 이후 후보 명단을 압축하기 시작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추전할 2~3명의 최종 후보군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베선트 장관이 당시 언급한 면접 완료 시점은 10월 초다. 언론에 연준 의장 후보 인선 과정을 설명할 때마다 그 시기가 임박했다는 점만 시사하고, 실제 실무 작업은 계속 미룬 셈이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베선트 장관이 후보 면접 얘기를 꺼내기도 전인 8월 5일 차기 연준 의장 후보를 두고 “케빈(Kevin)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사람과 다른 두 사람 등 네 명으로 (후보군을) 압축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CNBC방송 인터뷰에서는 “8월 4일 밤 베선트 장관에게 의중을 물었지만 ‘재무부 장관을 계속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달 13일에도 “차기 연준 의장 후보를 3∼4명으로 좁혔다”며 “새 의장을 (과거 관행에 비해) 조금 더 일찍 지명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현재 주요 외신에서 거론되는 차기 연준 의장 후보군은 미셸 보먼 연준 부의장과 필립 제퍼슨 연준 부의장,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 로리 로건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 제임스 불라드 전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 데비시스 저보스 제프리스 최고시장전략가, 래리 린지 전 연준 이사, 릭 리더 블랙록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 마크 서멀린 전 백악관 경제고문 등이다.
‘사상 최대’ 재정적자 갚으려면 이자라도 줄여야…‘약달러’가 관세 효과에도 유리
트럼프 대통령과 베선트 장관이 오락가락하는 발언을 내놓는 것은 겉으로만 연준에 금리 인하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뒤로는 차기 의장 인선에 신중을 기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내년 11월 3일 중간선거를 염두에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금리를 가파르게 내려 줄 확실한 인물을 심사숙고해 찾는 게 아니냐는 추정이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막대한 재정 적자와 ‘관세 전쟁’ 불확실성을 해결해야 되는 상황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 11월 중간선거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우익 청년 보수 인사인 찰리 커크의 암살에 극렬하게 반응하며 ‘좌파와의 전쟁’을 이어가는 것도, 연방정부의 일시적 업무중지(셧다운)를 불사하고 민주당과 각을 세우는 것도, 우방 국가의 원성까지 들으면서도 이민 단속에 매진하는 것도 모두 내년 선거 전략과 연관이 있다.
폭스비즈니스에 따르면 미국의 국가 부채는 최근 관세 수입 증가에도 불구하고 올 7월께 사상 처음으로 37조 달러(약 5경 1230조 원)를 돌파했다. 지난해 11월 말 36조 달러를 넘어선 지 8개월도 안 돼 1조 달러(약 1385조 원)가 더 불어났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관세를 최대한 많이 걷고 금리를 내려야만 선거 전까지 자신이 나라 빚을 많이 갚았다고 큰소리를 칠 수 있게 된다. 관세 정책 효과도 기준금리가 지금보다 더 내려가 달러화 가치가 떨어져야만 극대화된다. 약달러 상황이 돼야 미국산 제품의 수출 경쟁력은 상승, 다른 나라 국가의 대미 수출 경쟁력은 하락하는 까닭이다.
베선트 장관은 8얼 19일 CNBC에서 “그간 관세 수입이 올해 3000억 달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를 상당히 상향 조정해야 할 것 같다”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적자의 비율을 낮추기 위해 부채부터 상환할 것이고 그 이후에는 미국 국민들의 (소득)보전책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루스소셜을 통해 금리 인하에 머뭇거리는 파월 의장을 수 차례 조롱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너무 늦는(Too Late) 파월’ ‘미스터 투 레이트(금리 인하 결정이 너무 늦는 사람)’ ‘루저(실패자)’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어리석고 고집 센 사람’이라는 비난을 쉬지 않고 쏟았다. 7월 24일에는 미국 국가 지도자로는 이례적으로 아예 워싱턴DC의 연준 청사를 찾아가 파월 의장을 직접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 13일에는 트루스소셜에 “나는 파월 의장이 연준 건물 공사를 관리하면서 보여준 끔찍하고 터무니없는 무능한 업무 처리에 대한 소송을 고려하고 있다”고 협박했다.
파월 의장 역시 이에 굴하지 않고 금리 전망을 언급할 때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불확실성을 반드시 거론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심지어 지난달 17일 9개월 만에 0.25%포인트 금리를 내리면서도 “우리의 금리 결정이 정부 재정에 미치는 비용을 고려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다”라며 “중앙은행에 독립성이 없다면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금리를 사용하려는 큰 유혹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측근 연준에 꼽고 바이든 임명 이사 해임…잇딴 독립성 훼손 시도
주요 외신과 월가 전문가들이 차기 의장을 두고 백악관의 의중에 따라 움직일 인물이 맡을 가능성을 크게 보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시도를 이미 수 차례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스티븐 마이런 연준 이사는 지난달 17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12명의 투표권자 가운데 유일하게 ‘빅컷(0.50%포인트 금리 인하)’에 투표해 뒷말을 낳았다. 마이런 이사는 같은 달 4일 미국 상원 인사청문회 때부터 백악관 국가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 자리를 겸직한 채 연준 직위를 유지하겠다고 밝혀 이미 한 차례 논란을 불러일으킨 인물이다. 미국 행정부 인사가 중앙은행 직위를 함께 맡는 것은 1930년대 현대적인 연준이 구축된 이후 90여 년 만에 처음이다.
그 직전인 7월 30일 FOMC 회의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보먼 부의장과 월러 이사가 금리 동결 결정 속에 0.25%포인트 인하 소수 의견을 내 연준을 흔들었다. 2명의 연준 이사가 금리 결정에서 소수의견을 낸 것은 1993년 이후 32년 만에 처음이다. 당시 FOMC 회의에 불참한 아드리아나 쿠글러 전 이사는 석연찮은 이유로 8월 1일 돌연 사임했고 마이런 이사는 그녀의 후임으로 9월 FOMC 직전 취임했다.
연준 이사회는 총 7명으로 구성되고 이들은 FOMC 회의에 투표권을 쥔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다. FOMC에는 지역 연은 총재 12명도 위원으로 참석하지만, 투표권은 이들 가운데 5명만 행사한다. 뉴욕을 제외한 나머지 11개 연은에서 매년 돌아가며 4명씩 투표권자가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임명한 리사 쿡 연준 이사에게 지난달 25일 주택담보대출 사기 혐의를 이유로 해임을 통보하기도 했다. 쿡 이사를 교체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 임명 인사는 보먼 부의장, 월러 이사, 마이런 이사 등 연준 이사 7명의 과반을 차지하게 된다. 이후 쿡 이사는 지난달 9일과 15일 각각 해임 효력을 중단하는 긴급명령 청구 소송 1·2심에서 연달아 승소해 9월 FOMC 회의에 참석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달 1일 트럼프 행정부의 쿡 이사 해임 요구 재판 구두 변론 기일을 내년 1월로 잡아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녀가 연준 직위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 파월 의장의 경우 의장직 임기는 내년 5월까지이지만, 이사직 임기는 2028년까지다.
경제학자들 “선호하는 인물은 월러, 유력 인사는 해싯”…내년 11월 중간선거 전까지 통화정책 전환 가능성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 의장 후보자들의 성향을 예상보다 면밀히 살필 것이라는 예측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지난달 28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시카고대 부스 경영대학원과 경제학자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응답자 44명 가운데 82%가 차기 연준 의장으로 월러 이사를 가장 선호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선호도와 달리 경제학자들이 가장 유력한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는 꼽은 인물은 해싯 위원장(39%)이었다. 월러 이사는 마이런 이사와 함께 20%를 얻어 실제 차기 연준 의장이 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FT는 “경제학자들이 의장으로 원하는 인물과 실제로 될 것으로 예상하는 인물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에 강력한 압박을 가한다는 사실을 반영한다”고 평가했다.
월가에서는 내년 5월 이후 새 의장이 취임하면 연준이 중간선거가 있는 같은 해 11월까지 금리 인하를 더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앞서 연준은 지난달 17일 FOMC 회의에서 내년 연말 기준금리 전망치를 올해 말보다 겨우 0.2%포인트 낮은 3.4%로 제시했다. 현 위원들은 평균적으로 내년에 고작 한 번만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하는 셈이다. 내년 말 금리 전망 분포도 2.75∼3.75%로 넓게 분산돼 위원들 간 의견 차이도 큰 것으로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현 4.0~4.25%인 기준금리를 1%대까지 낮추라고 압박하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의장이 바뀔 경우 연준의 통화정책 기조도 단번에 뒤집힐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파월 의장을 비롯해 대다수 연준 인사들은 관세 불확실성을 이유로 급격한 금리 인하에 부정적인 인식을 내비치고 있다. 파월 의장은 지난달 23일 미국 로드아일랜드주에서 열린 ‘그레이터 프로비던스 상공회의소 2025 경제 전망 오찬’ 행사에서 다음 금리 인하 시기를 전혀 시사하지 않은 채 “너무 빨리 금리를 인하해 새로운 인플레이션 급등의 위험을 감수하거나 너무 느리게 금리를 인하해 실업률이 불필요하게 상승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5일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 시장은 올 연말까지 기준금리가 50bp(bp=0.01%포인트) 인하될 확률을 84.4%로, 25bp만 내릴 확률을 15.0%로 각각 반영했다. 금리를 아예 안 내릴 확률도 0.6%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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