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사 자격을 보유한 변호사가 세무 업무를 볼 수 없게 막은 세무사·법인세·소득세법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사진)의 결정이 나왔다. 최근 로스쿨 제도 도입으로 포화 상태를 맞은 변호사업계가 세무사들과 밥그릇 싸움을 치열하게 펼치는 점을 감안하면 기존 변호사들에게 일단 유리한 판단이 나온 셈이다.
헌재는 26일 복수의 변호사가 세무 대리 업무 진출을 사실상 막고 있는 세무사법, 법인세법 소득세법이 직업 자유를 침해했다며 지난 2015년과 2016년 낸 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6(위헌)대3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는 해당 법률이 위헌이긴 하지만 즉각 무효화할 경우 나타날 사회 혼란을 위해 법 개정 때까지 한시적으로 존속시키는 결정 방식이다. 위헌 판결을 받은 현 법률 조항은 오는 2019년 12월31일까지 잠정 인정되며, 국회는 이때까지 이를 개정해야 한다.
이 사건은 지난 2004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2008년 10월부터 세무대리 업무를 하던 A변호사가 서울지방국세청장에게 업무 등록 갱신 신청을 했다가 반려 처분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A변호사는 서울행정법원에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고,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를 진행하던 중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냈다. 또 2007년 사시에 합격한 B변호사도 세무조정계산서 작성 주체를 세무사등록부에 등록한 변호사로 한정한 법률 조항이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에게는 세무사 자격이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세무조정업무를 일체 할 수 없도록 규정한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진성·안창호·강일원 재판관은 “변호사 업무 수행에는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으면서 세무대리 업무만 수행하지 못하는 변호사의 불이익이 부실한 세무대리를 방지하고 납세자에게 적정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익보다 크다고 볼 수 없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헌재의 이번 판단으로 로스쿨 도입 이후 포화 상태로 위기에 처했던 변호사들은 잠시 한숨을 돌리게 됐다. 변호사 집단과 세무사 등 다른 전문직간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판정승을 한 차례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2003년까지 세무사 자격을 받은 변호사와 사법연수생은 세무 대리를 할 수 있었으나, 같은해 세무사법이 개정되면서 이후 자격을 취득한 변호사는 해당 업무를 일체 할 수 없었다. 나아가 올해부터는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을 자동으로 부여하는 법 조항이 아예 폐지됐다. 다만 이번 헌재 결정으로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은 앞으로 세무 업무 진출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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