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증권선물시장 개장식에서 “금융시장 투자자들이 선진국 수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10년이 더 흘렀다. 하지만 그 사이 저축은행 부실 사태, 동양그룹 사태 등 대형 금융사고가 잇달아 발생했고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오히려 더 커졌다. 삼성증권의 배당 사고를 지켜본 투자자들은 멈출 줄 모르는 금융사고에 한숨만 내쉬었다. 공모주 부풀리기, 공매도, 불완전판매 등 금융투자 리스크에 금융당국 감시·감독 강화 등의 정책은 그동안 별 효과를 내지 못했다. ‘사후약방문’일 뿐이었다. 전문가들은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선진국처럼 피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을 소비자 중심으로 전환하고 근본적으로는 소비자 보호를 위한 법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월가, 규제보다 무거운 의무 적용=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브로커와 딜러에게도 신의성실 의무(fiduciary duty)를 적용했다. 신의성실규칙이란 고객에게 금융상품 권유 시 고객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이해 상충 발생 시 고객에게 소송제기권한이 부여되는 것이다. 앞으로 월가의 브로커와 딜러는 소매투자자에게 투자 권유 시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했다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며 고객과의 이해 상충이 있는 경우 고객에게 공시하거나 이를 경감하는 정책 또는 절차를 의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이해 상충 방지를 위해 제공 서비스 내용, 제재 사실 등 브로커·자문업자의 법적 관계의 중요 사항을 투자자가 알기 쉽게 요약 설명해야 하는 내용도 담겼다. 신의성실 의무 확대는 규제를 요리조리 피하던 월가를 둘러싼 여론이 트럼프 행정부를 공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일본 금융청도 규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금융회사에 소비자 중심 업무 운영을 위한 ‘베스트 프랙티스’를 제공했다. 여기에는 소비자를 위한 최선의 이익 추구, 수수료 등의 명확화 등 총 7가지의 원칙이 담겨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일본의 937개 금융회사가 원칙을 채택해 운영 중이다.
◇규제를 위한 정책의 한계=금융당국은 물론 국회는 삼성증권 배당 사고의 근본원인이 공매도가 아님에도 공매도 시스템 개선에만 집착한다. 공매도 과열종목지정제도 등 정부가 이미 내놓은 규제안이 있음에도 국회는 한 발 더 나아가 △유상증자 신주 공매도 금지 △코스닥시장 공매도 전면 금지까지 다양한 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공매도는 주가 하락과 상관관계가 낮다는 점이 증명됐고 주가 하락 시 투자전략으로 이미 자리매김했다. 더구나 금융 선진국들의 경우 공매도 자체를 완전히 금지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시장에서만 공매도를 내칠 수는 없다. 자칫 공매도 규제가 규제를 위한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매도 자체에 대한 불만보다도 현실적으로 자금력이 있는 일부 기관투자가들만 이용하는 현 상황에 대한 불만이 크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증권사의 한 센터장은 “공매도는 제도 자체보다 개인투자자들이 시장에서 소외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고가 터지면 규제부터 마련하기보다 미국과 일본의 사례처럼 금융소비자의 요구를 잡아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나마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해 금융감독원이 금융투자협회와 공동으로 ‘투자자 중심의 펀드영업행위준칙’을 제정한 것은 진일보한 사례다.
◇소비자 보호 방안부터 마련해야=소비자 보호를 위해 법안 마련이 시급하다. 금융위는 공모가를 부풀린 후 회사를 팔아 치워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을 막기 위해 영업활동을 하지 않는 이른바 ‘껍데기’ 회사가 최대주주가 됐을 경우 1년간 보호예수 의무를 부여하도록 했다. 유가증권시장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다. 이런 규제들이 투자자들의 피해를 줄일 수는 있지만 피해 자체를 원천 차단할 수는 없다. 금융소비자 보호의 핵심은 소비자 피해 구제에 있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소비자 보호 법제가 미비한 상황에서는 금융회사에 대한 신뢰와 적극적인 금융거래 참여가 이뤄지기 어려우며 이는 궁극적으로 금융회사의 경쟁력 및 금융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고 강조했다.
2012년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자동폐기돼 다시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안을 두고 이견이 있고 내용도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과징금제도의 도입, 피해자의 합의금 요구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기 위한 목적에서 행해지는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금지하는 소송중지제도 등이 금소법에 들어 있다. 다만 과징금 범위는 위반행위로 발생한 수입의 50% 범위 이내로 제한되며 소송중지제도는 2,000만원 이하의 소액사건만을 대상으로 한다. 김 위원은 “금소법 소액분쟁 사건의 대상 규모, 과징금 범위뿐 아니라 민사적 행정적 제재권한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제재권 강화로 컴플라이언스 비용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할 수 있지만 선진국 사례를 보면 사전규제가 규정 중심에서 원칙 중심으로 바뀜으로써 실질적 규제 완화가 이뤄져 비용이 오히려 경감되는 효과가 발상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