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두 번째 방북 이후 미국과 북한이 연이어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긍정적 기대감을 나타내면서 양측이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주고받는 방식에 대한 기본 합의를 이뤄낸 게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 비핵화 데드라인과 체제보장·경제보상을 큰 틀에서 교환하는 ‘그랜드 바겐(bargain)’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북미 정상회담 개최 결정 이후에도 상호 공격적 언사를 통해 기싸움을 이어가던 모습과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는 점에서다. 다만 미국 내부에서 이번 대화를 계기로 북핵 문제를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가 여전히 높은데다 중국 개입과 인권 문제 등의 변수도 도사리고 있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까지는 과도한 낙관 대신 조심스럽게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일 북한을 극비리에 재방문한 폼페이오 장관은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90분 면담 후 억류 미국인 3명과 함께 미국으로 10일 돌아왔다. 폼페이오 장관은 귀환 길에 기자들을 만나 “평양에서 13시간 동안 체류했다. 정말 긴 하루였지만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가치가 있었다. 매우 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정상회담 장소와 시기도 정했다고 밝혔다.
북한도 이례적으로 즉각 화답했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들은 10일 폼페이오 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김 위원장에게 전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조미 수뇌 상봉과 회담(북미 정상회담)’을 처음으로 공식 보도했다는 점이다. 또 북한 매체들은 ‘훌륭한 회담’ ‘만족한 결과’ ‘충분한 합의’ 등으로 김 위원장과 폼페이오 장관의 만남을 묘사했다. 심지어 조선중앙TV는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대안’이라는 표현도 썼다.
폼페이오 귀환길 “매우 생산적”
北 “조미 수뇌 상봉 기대” 화답
核사찰·검증·시간표 접점 찾은듯
北·美 핵포기 대가 빅딜 가능성도
강경파·中 개입·인권 등은 변수로
그간 핵 폐기, 사찰, 검증, 타임테이블 등을 두고 이견을 보여온 미국과 북한이 접점을 찾은 게 아니냐는 기대감을 끌어내는 대목이다. 현재 핵을 개발할 수 있거나 미래 핵 개발에 동원될 수 있는 연구·제조·실험·저장 관련 시설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강력한 사찰뿐 아니라 이미 만들어 놓은 20여개의 핵, 즉 과거 핵 폐기에 대해서도 합의점을 찾았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또한 비핵화에 대한 잠정 합의가 이뤄졌다면 이에 대한 보상 격인 북미관계 정상화, 적대시 정책 폐기 등 북한 체제 안전 보장에 대한 미국의 약속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북한이 핵 대신 경제발전을 택하기로 한 만큼 과거 핵까지 완전히 포기하는 대가로 대규모 경제지원 등 대북 보상책 빅딜도 있었을 수 있다.
다만 폼페이오 장관이 정상회담에 앞서 한 번 정도 더 실무회동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한 만큼 세부적인 부분에 대한 최종 조율은 숙제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CVID(완전한 비핵화)’보다 더 강력한 ‘PVID(영구적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 내 초강경파가 목소리를 더 높일 경우 막판 조율이 난항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일본 아사히신문은 10일 북한 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수천명에 달하는 북한의 핵 개발 기술자 해외 이주와 핵실험 및 시설 관련 데이터 폐기를 북한에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미국은 장거리탄도미사일과 동등한 능력을 가진 인공위성 탑재 우주 로켓의 발사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북한은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이에 더해 북한이 핵 협상 과정에서 주장했던 주한미군 철수 문제의 경우 이번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지만 중국이 최근 한반도 문제에 깊숙한 개입을 시도하고 있는 점에서 북한을 통해 중국이 주한미군을 쟁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폼페이오 장관이 이번에 억류 미국인 3명을 데리고 오기는 했지만 미국 정치권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계속 거론하고 있는 점도 북한으로서는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