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초계기 사업에 변수가 생겼다. 잠복 상태에서 현안으로 불거져 나온 변수는 크게 두 가지. 시기가 늦춰지거나 군의 작전요구성능(ROC)이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외형적 경쟁구도 역시 조금 바뀌었다. 미국과 함께 세계 군용기 및 대형기 시장을 양분하는 에어버스가 공식 참여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미국 보잉사의 우위에 스웨덴 사브사가 도전하는 양상이 ‘빅3’ 간 삼파전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 에어버스사 수주전 가세, 다자 경쟁구도 형성=유럽의 다국적기업인 에어버스가 지난 17일 한국 해군의 차기 해상초계기 도입사업에 참여한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에어버스가 제안한 기종은 C295 수송기를 해상초계기로 개조한 ‘C295MPA’. 일각에서는 에어버스사의 ‘한국이 원할 경우 대형여객기인 A320 기체를 개조한 해상초계기를 납품할 수도 있다’는 제안도 사업설명에 포함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C295MPA 단일 카드를 꺼냈다.
C295MPA의 기본성능은 최고시속 480㎞, 순항거리 5,370㎞, 작전반경 3,500㎞에 최대 이륙중량 23.2톤. 어뢰와 공대함 유도탄 등으로 무장 가능하다. 상대적으로 기체가 작은데다 속도가 매우 느린 편이지만 두 가지 장점을 가졌다. 첫째는 가격. 지금까지 제안된 후보기 중 가장 싸다. 에어버스코리아 방산·항공(D&S)은 “한국 정부의 예산 및 요구조건을 고려할 때 에어버스는 20대의 해상초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고 전했다. 둘째는 실전에서 운용되는 기체라는 점이다. 칠레와 브라질 등에서 운용되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후보 기종 중 실제로 운용되는 기체는 P-8과 C295MPA 둘뿐이다.
◇ 외형은 ‘빅3 경쟁’이나 P-8 우위는 여전=에어버스의 수주전 참여로 경쟁 양상은 빅3 간 삼파전으로 변한 것 같지만 해군의 선호도는 바뀐 게 없다. P-8이 기체 크기와 속도, 향후 업그레이드의 용이성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절대우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B-737 여객기를 기체로 삼아 크기가 대형인데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 해군에서 100여대 이상 운용되는 ‘검증 받은 기체’라는 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최대 이륙중량도 70톤이어서 각종 무장은 물론 전자전 장비 및 감시 장비를 얼마든지 적재할 공간이 있다. 향후 신기술이 개발될 때 성능개량(업그레이드)이 용이하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 관건은 사업시기 및 ROC 유지 여부=성능상의 우세가 뚜렷하고 해군의 선호도가 크다는 점에서 당초 P-8의 일방적 승리가 점쳐졌으나 뜻밖의 변수가 나타났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등 평화 분위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확산되면서 해상초계기 사업도 축소 또는 연기 쪽으로 흐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방위사업청도 다음달 열릴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 모든 가능성에 대한 검토 보고서를 올릴 예정으로 알려졌다. 물론 평화가 정착되고 통일까지 이뤄져도 주변국과 균형을 고려할 때 해상초계기의 필요성이 더 크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 사업의 고비마다 북한의 위협이 사업을 되살리는 추진동력이었다는 점에서 물량이나 ROC 수준, 도입시기는 공론화할 가능성이 크다.
◇ ‘북 위협’으로 커진 사업, ‘비핵화’ 영향받나=우리 해군이 본격적인 해상초계기를 처음 도입한 시기는 지난 1995년. 생산이 끝난 P-3C의 라인을 되살려 8대를 들여왔다. 2011년에는 미국의 중고기체인 P-3B 8대를 도입해 성능을 대폭 개량한 뒤 P-3CK라는 이름으로 제식화하는 사업을 마무리했다. 추가 도입과 개량 사업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서 터진 천안함 사건으로 해군은 다시 해상초계기 도입 확대에 눈을 돌렸다. 해군이 원한 최소 대수는 32대. 미 해군에서 퇴역한 중고기체인 S-3 바이킹 20대를 들여온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미국 측의 가격 인상 논란 끝에 사업이 무산되던 시점에서 새로운 동력이 생겼다.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위협이 시작된 것. 정부는 급히 해상초계기 관련 예산을 올려 비싸서 엄두도 못 내던 P-8 포세이돈급까지 구매 대상에 포함했다. 군의 ROC도 포세이돈급에 맞춰 올라갔다. ROC가 이전 수준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도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평화 분위기가 보인다고 당장 ROC를 하향 조정하기는 어렵기에 사업 자체를 연기할 수 있다는 논의가 나온다. 사실상의 ‘긴급소요’ 사업에서 제외된다는 얘기다. 해외 업체들이 군의 요구나 기대에 밑도는 기체들을 후보기로 올리는 것이 이런 분위기와 관련돼 있는지도 주목거리다.
해외 업체들이 제안하는 후보기들이 검증된 것이거나 작은 기체라면 예전처럼 P-3 중고품을 사서 새로 뜯어고쳐 사용하는 방법도 업계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다. 일부 업체에서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P-3 조립과 개량사업에서 상당한 기술을 축적했으며 한 번 더 대규모 개량사업이 진행되면 해상초계기를 국내 기술력으로 개발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 美, ‘싸게 사려면 지금이 적기’=당국의 고민은 선택과 결정이 쉽지 않다는 점. 성공하면 파격적인 기술을 제공한다며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는 스웨덴 사브사의 마케팅도 선택을 어렵게 한다. 이 때문에 여느 때보다 수많은 시나리오를 짜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성능인 P-8을 지금 사야 가장 싸게 도입할 수 있다는 사실도 당국의 고민거리다. 4월 말 미 해군용 100번째 기체를 생산한 보잉사의 P-8 생산라인의 수율은 최근 최고조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이 P-8을 주문하면 미 해군용 마지막 기체 생산물량과 맞물려 가장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 해군 납품 물량이 유지될 때까지 보잉사의 P-8 최대 생산량은 월 1.5대이나 해외판매용으로 라인이 전환되면 두 달에 1.5대로 반감돼 가격이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을 최근 당국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P-8 가격이 많이 내려가 정부가 책정한 1조9,400억원이면 최대 10대까지 구매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당국자는 “후보기를 공식적으로 내세운 업체들이 제시하는 가격에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한미동맹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미국 측을 설득해야 하는 입장이라는 정치적 고려사항도 기체 결정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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