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비핵화 국면을 보이다 한국과 미국을 향해 동시에 강경한 태도를 표출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이 최대 고비에 직면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 여정에서 ‘협상가’로서의 면모를 인정받았지만 북미정상회담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북한이 선회하는 모습을 보이자 문 대통령의 중재역할이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청와대는 특히 북한이 미국을 향해서는 외무성이, 한국에 대해선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각각 분담해 비난의 목소리를 내비치는 이유를 분석하면서도 현재 상황을 키우지 않기 위해 입장 표명을 자제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18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막후에서 북한에 메시지를 보내는 상황”이라며 “어제 밝힌 청와대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전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북미정상회담이 상호존중의 정신하에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북미 간) 입장을 조율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북미 간 ‘역지사지’해야 한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북미가 비핵화에 대한 원칙적 합의에 상당 부분 접근하고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일정까지 밝힌 상황에서 미국으로부터 강경 메시지가 지속적으로 흘러나오는 데 대한 북한의 불만을 미국은 고려해야 하고, 북한 역시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위협적인 언사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로 보인다.
다만 북미 간 중재에 집중해야 할 청와대로서는 최근 흐름이 일종의 기 싸움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고 판단해 말을 최대한 아끼고 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리선권 북한 조평통 위원장이 전날 ‘엄중한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조선의 현 정권과 다시 마주앉는 일은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 데 대해 “지켜보겠다는 말씀밖에 드릴 게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대남 비난 또한 급박하게 돌아가는 북미 간 비핵화 로드맵 대결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는 청와대의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북한이 한국과 미국을 동시에 비난하고 나서면서 중재역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문 대통령의 운신 폭이 좁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간 빈틈없는 한미 공조와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쌍끌이’로 북미 간 ‘신뢰 쌓기’에 주력했던 문 대통령으로서는 북한의 동시다발적인 불만 표출을 해결해 북미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더욱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을 다시 안정적인 비핵화 국면으로 진입시키기 위한 조치로 거론되는 것은 남북 정상 간 ‘핫라인’ 통화다. 갈등의 불씨가 지펴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차일피일 미뤄졌던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직접 통화에 적기라는 견해도 많다. 북한이 한미 공군의 맥스선더 훈련과 태영호 전 공사의 발언을 불만 표출의 사유로 밝혔지만 핫라인 통화로 ‘진짜 사유’를 허심탄회하게 소통해 오해를 풀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문 대통령은 나흘 앞으로 다가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북한의 진의를 설명하고 쌓인 의구심을 해소해야 안정적인 북미정상회담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적어도 현 국면에서 이를 중재할 인물은 문 대통령이 유일한 상황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남북 정상 간 핫라인 통화 시점에 대해 “상황을 보고 있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도 이날 ‘통화계획이 여전히 없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각급 라인을 통해 먼저 진의를 파악한 뒤 핫라인을 가동해야 한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일각에서는 핫라인 통화가 문 대통령의 방미 이후 이뤄질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장아람인턴기자 ram101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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