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국회와 금융권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을 핵심으로 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이르면 이달 말에 발의할 계획이다.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개정안에 따르면 노조가 주축인 우리사주조합이나 소수주주가 추천한 사람 가운데서 반드시 한 명 이상을 사외이사로 이사회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개정안은 또 금융지주 회장이나 행장 등 최고경영자(CEO)를 선출하는 권한을 가진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도 우리사주조합이나 소수주주가 추천한 사외이사가 한 명 이상 포함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더구나 개정안에는 법안 공포 6개월 후부터 효력이 발생하며 개별 금융회사는 법 시행 후 최초로 소집되는 주주총회에서 관련 요건을 충족하도록 조치하게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들은 관련 법이 국회를 통과해 6개월 이내 시행되면 1년 안에 무조건 노동이사를 이사회에 포함시켜야 할 정도로 구속력이 강력하다.
하지만 민간 금융회사들은 경영 자율성을 해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이번 정부 들어 친(親)노동세력의 영향력이 워낙 강하니 향후 국회 논의 방향을 지켜보는 것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면서도 “지금도 노조 목소리가 지나치게 강한데 정상적 경영이 가능하겠느냐”며 경영효율 저하를 우려했다. 지난해처럼 실적이 좋을 때 과감한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을 통해 청년고용을 확대해야 하는데 노조 추천 사외이사가 고용불안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면 경영진이 결단을 내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개정안에서 법 공포 이후 6개월 내에 노동이사제 도입을 의무화한 것도 무리라는 주장이 나온다. 상법 등 관련 법상 이사회 구성은 주총 등의 절차를 거치도록 돼 있는데 법적 절차를 사실상 무시하도록 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KB금융 노조의 노동이사제 도입 시도도 주총을 통한 표 대결에서 져 모두 무산됐었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도 노조는 우리사주를 통해 주주제안권을 행사하고 이를 통해 경영에 관여할 수 있다”며 “아무리 공적 기능이 큰 금융회사라고 해도 사회적 합의 없이 성급하게 추진할 일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선진국처럼 노사 신뢰가 바탕이 돼도 노동이사제 도입의 효과를 볼까 말까 한 상황인데 노사가 첨예하게 갈등하는 국내 여건을 감안하면 자칫 노사가 회사 경영을 놓고 장기간 대치할 수도 있다. 더구나 노동이사제가 현실화되면 가뜩이나 투자를 꺼리는 해외 투자자들이 국내 금융회사 투자를 더욱 꺼리고, 주가 하락 등의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국내 시중은행의 수익성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선진국과 비교할 때 절반 수준에 그치는 상황에서 노동이사제 도입으로 실적이 더 부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다.
금융권에서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둘러싼 환경이 불과 몇 달 사이에 급격히 달라져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금융행정혁신의 설계자였던 윤석헌 원장이 금융당국의 수장으로 취임했기 때문이다. 윤 금융감독원장은 자신이 마련한 혁신권고안에 대해 최 위원장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응을 내놓자 주변에 서운한 감정을 여러 차례 토로한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금융감독원이 법률 개정권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감독당국 수장의 의견이 엇갈릴 경우 국회 법안 심사 과정에서 노동이사제 도입 쪽으로 의견이 쏠릴 수 있다. 지난해 말 윤 원장이 이끌었던 금융행정혁신위원회가 가세해 “금융기관의 노동이사제 도입을 금융위원회가 직접 검토해달라”고 제안했지만 최 위원장은 “노동이사제는 노사 합의가 먼저”라며 사실상 민간 금융회사 도입은 어렵다는 뜻을 에둘러 내비쳤다.
실제 금융위가 3월 공개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방안’에는 노동이사제와 관련한 내용이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금융위는 임원추천위원회에 대표이사를 배제해 이른바 ‘셀프 연임’을 막고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강화해 경영 투명성을 높이는 등 비교적 ‘온건한’ 수준에서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금융위는 이 같은 내용의 개정안에 대한 입법예고를 이미 마쳤으며 국무회의 등 법적 절차를 거쳐 이르면 다음달 중 국회에 정식 제출할 계획이어서 여당 발의 법안과 충돌할 가능성도 남아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하정연·서일범기자 ellenah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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